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금강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자, 가장 멀어진 산이다. 바다 건너 먼 외국은 갈 수 있어도, 불과 수백 킬로미터 북쪽의 그 산은 갈 수 없다. 그 길은 17년째 닫혀 있다. 이 현실은 단지 여행의 불편함이 아니라, 분단의 비극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금강산 관광은 1998년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아래 남북이 처음으로 제도화된 교류를 실현한 결과였다. 남측 국민이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었고, 북측 주민이 남측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은, 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가장 평화로운 장면 중 하나였다. 관광객들은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분단선을 넘어선 평화의 증인이었다. 하지만 20087월 발생한 총격 사건 이후, 그 길은 갑자기 닫혔다. 남북은 서로를 비난했고, 책임 소재를 두고 협의는 무산됐다. 이후 금강산은 단절과 냉전의 상징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지금은 남측이 지은 호텔과 문화시설이 철거되고, 북측 주도의 관광지로 재편되고 있다. 17년 동안 변한 것은 풍경이 아니라 체제의 벽이다. 오늘의 한반도는 다시 냉전의 구조로 회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 일본의 재무장, 남측의 한미일 공조 강화 등은 한반도를 국제정치의 대결 축 속에 묶어두고 있다. 남북 관계는 이런 거대한 구조의 하위 변수로 전락했다. 금강산의 문이 닫혀 있는 이유도, 남북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국제질서의 압박 속에서 실질적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의 구조는 인간의 삶을 대변하지 않는다. 금강산 관광이 갖는 의미는 정치적 상징을 넘어, 수십만 이산가족과 평범한 시민의 염원을 담은 인도적 공간이었다. 한 노부부가 그곳에서 50년 만에 형제를 만났고, 한 아이는 분단의 의미를 처음 체감했다. 국가가 금강산의 문을 닫는다는 것은, 결국 그 인간의 시간을 닫는 일과 같다. 남북은 여전히 대화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구체적 행동은 없다. 북한은 내부 체제 결속을 위해 남측과의 단절을 택했고, 남측은 대북 제재와 국제 공조 속에서 실질적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는 외교·안보 논리 속에 묻혀 있으며, 평화 정책은 선언으로만 존재한다. 분단의 구조는 이미 일상에 내재화되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치의 결단이 아니라 인간의 상식이다. 평화를 정치의 부속물로 취급하는 한, 남북 관계는 앞으로도 전진하지 못한다. 금강산 관광은 군사적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이 아니라, 이산가족이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였다. 이 길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선언 속 단어로만 남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 체제가 엄존하더라도, 인도적 교류는 충분히 가능하다. 예술·환경·의료 분야의 민간 교류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금강산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대결과 불신의 시대에도 우리는 그 길을 열었다. 지금이 더 어려운 시기라고 말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남북의 길을 경화시켰던 최악의 지도자가 융통의 최선 지도자로 바뀐 현실에서 가져보는 설레는 희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가고 싶다. 보고 싶다. 죽기 전에 금강의 냄새를 맡고 싶다. 국민은 가고 싶은데 누가, , 무슨 목적으로 막는 것인가.

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생활의 질서이다. 총과 제재가 아니라 신뢰와 만남에서 비롯된다. 금강산의 문을 다시 여는 일은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를 상상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남북의 정치가 길을 막고 있다면, 시민의 상식이 그 문을 다시 두드려야 한다.

지금 금강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봉우리도, 바람도, 바다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만 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그 길이 다시 열릴 때, 그것은 단순한 관광의 재개가 아니라, 분단 시대가 끝나가는 조용한 신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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