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생각나는 시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한으로부터 빚어지는 깨끗한 영혼의 외침-


머릿수건 풀어놓고/옹이 박힌 소나무에 호미자루 걸어놓고/사다리 타고 가을이 가네/비닐먼지 풀썩대는/청 무 황토밭 이랑을 지나/까치 떼 쪼아 먹은 홍시 속 석양 길/빈 농약 병 떨구며 단풍잎 지네/빚 없는 한 세상 풀뿌리 머리에 이고/도래동 앞 산마루 넘어가는/풀잎 끊긴 벌레소리/흙 가슴 퍼 올리는 검은 연기 삽을 메고/억새꽃 날리는 뜻 모를 노래길 따라/사다리 타고 가을이 가네



- 박종훈 시인의 “길 노래” 전문-


 “길노래”는 전형적인 농촌의 가을을 배경으로 해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대조적 시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차마 뜬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그러나 입술을 깨물며 직시해야 할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상여 길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는 어머니의 죽음이나 상여가 지나가는 외형적 단순 묘사에 머물지 않고 어머니의 한 평생에서 쌓여 온 한과 죽음에 의해 야기될 수밖에 없는 삶의 문제까지도 압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머릿수건 풀어놓고” “옹이 박힌 소나무에 호미자루 걸어놓고”는 삶의 모습이며, “사다리 타고 가을이 가네” “빈 농약병 떨구며 단풍잎 지네” “풀뿌리 머리에 이고”등은 죽음의 상징어들이다. 빈 농약병 떨구며 단풍잎으로 떨어져 버린 어머니의 죽음에 의해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삶이 비로소 시인의 가슴에 저미어오며 새로운 문제로 인식 확장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는 눈이 시리도록 아프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박 시인에게 있어서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런 자연의 법칙이며 생명의 법칙에 의해 운명을 달리 한 사실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에 대하여 남달리 매달리는 이유가 이 시에서 밝혀지고 있으며 그 이유가 바로 이 시의 핵심이 되고 있다.


 


 생전의 모습인 “머리수건 풀어놓고”, “호미자루 걸어놓고”가 사후의 모습인 “빈 농약 병 떨구며” “단풍잎 지네”와의 대구 적 연관 관계에 의하여 어머니의 죽음이 일반적 여느 죽음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그 일반적이지 못한 어머니의 죽음이 시인의 내면에서 삶의 문제를 제기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예사롭지 않은 어머니의 죽음이 소재로 쓰여 진 이 시의 뒷면에 숨겨진 암시는 무엇일까? 어찌 보면 어머니의 죽음을 접한 시인 당사자만의 회한과 아픔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제8연에 “빚 없는 한세상”으로 표현 된 구절이 우리의 절박한 농촌 현실과 농민들 그리고 어머니들의 한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 작중 인물인 망자(어머니)만의 죽음이나 한이 아니라 그와 똑같은 환경 속에서 빚 없는 한세상을 살아오고 또 살다 갈 , 그래서 한이 맺힐 수밖에 없는 농어촌 사람들 다수의 이야기이며 특히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시인은 이쯤해서 이제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심경의 토로를 끝낼 법도 한데 아직도 시인으로 하여금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또 있다. 그 견딜 수 없음에 쓴 것이 곧 “억새 꽃 날리는 뜻 모를 노래길 따라”에서 “뜻 모를”이란 시어가 바로 그 것인데 이는 단순히 한과 죽음의 차원을 넘어 아직도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한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 문제가 제기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박 시인은 길노래를 통하여 어머니의 삶과 죽음이 자신의 내면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명징하게 보여 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찰나의 아찔함을 맛보게 하고 삶의 본질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다시 또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12월, 거침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천리 고향길보다 길게만 느껴지는 초겨울 밤을 아껴서 한번쯤 저마다의 삶을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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