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막 오른 선거판

6·2지방선거의 막이 올랐다. 출마 예상자들은 저마다 기자회견 등을 통해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에 뛰어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번 선거는 광역자치단체장과 교육감․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지역·비례)․ 교육위원 선거까지 한꺼번에 치러져 유권자는 모두 8명에게 투표해야 하는 선거로 역대 최대 규모의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되고 있다. 지방선거전이 사실상 시작되면서 후보들의 금품 살포와 기부 행위 등의 부정선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광역시 등 대도시의 선거에서는 금품이 오가는 경우가 차츰 줄어들고 있지만, 문제는 농어촌지역과 인구 10만에서 30만명 규모의 중간급 시에서는 돈선거가 여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방선거는 아니지만 최근 조합장 선거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우리 고장도 예외가 아니다. 전남 신안군 임자농협 조합장 '돈 선거'와 관련 출마자 5명 모두에 대해 농협조합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으며, 조합원 1093명 가운데 700여명을 금품수수 등의 여부로 수사 하고 있다. 광주지법은 영광군 수협 조합장 K모씨에 대해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조합원에게 돈을 준 혐의(수산업협동조합법 위반)로 당선무효 형에 해당하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최근 ‘돈선거추방 및 공명선거 추진위원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진 화순군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돈 선거 악몽이 시달리는 지역으로 이름이 나있다. 중도하차한 두 명의 전직 군수도 선거와 관련된 금품수수가 문제가 됐다. 돈 선거 오명은 해남군도 쓰고 있다. 선거 때마다 해남에서는 ‘개도 만원자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닐 정도이다.

 

2. 되풀이되는 관행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일로 곤욕을 치룬 지역에서조차 또 다시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봉화지역에서 4년전 돈 선거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돈 선거로 주민들이 무더기로 집단 사법처리 될 위기에 처했다. 2006년 지방선거 때 군수 당선자 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주민들이 무더기로 사법처리돼 전국적인 망신을 당한 봉화지역에서 최근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돌린 혐의(농업협동조합법 위반)로 봉화 상운농협 조합장 출마 예정자가 구속되고, 그에게서 작년 5월부터 최근까지 1인당 5만∼50만원을 받은 혐의로 조합원 500여명이 조사를 받고 있다.

 

3.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우리는 이미 돈선거의 폐해를 충분히 보아왔다. 2006년 출범한 민선 4기의 기초단체장 234명 가운데 18%인 42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이 가운데 자진해서 사퇴한 5명을 제외한 37명의 38%인 14명은 공직선거법상 금품 살포와 기부행위 등 제한 규정을 위반했다. 이른바 '돈 선거'가 우리나라의 선거문화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6ㆍ2 지방선거가 석 달가량 남긴 이 시점에서 벌써부터 선거운동이 과열ㆍ혼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달(2010년 1월) 말까지 집계된 선거법 위반 총 건수는 959건이다. 전체 건수로 보면 2002년(2,365건) 2006년(2,144건)의 절반 가량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교묘하거나 새로운 수법을 쓰는 탈법 선거운동이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돈 선거 행위(362건)가 전체 단속 건수의 38%에 육박해 20%대에 머물던 이전보다 대폭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수사당국에 적발된 선거사범만 해도 벌써 1백50여명에 이르고 있다. 유형별로 보면 금품향응 제공이 59건으로 가장 많았고, 사전선거운동이 33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미 광역단체장 입후보 예정자 18명을 비롯해 기초단체장 입후보 예정자 81명, 광역의원 입후보 예정자 6명, 기초의원 입후보 예정자 45명, 교육감 입후보 예정자 3명 등이 선거법을 위반했다. 이에 따라 선관위, 검경의 선거법 위반 행위 감시활동도 강화되고 있다. 설을 빙자한 명절선물 제공을 비롯해 세시풍속행사, 경로잔치·동창회·종친회·향후회 등 행사 및 모임에 금품·음식 등의 제공 여부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또 무료 귀향·귀경버스 제공과 역·대합실 등에서 다과·음료 등을 나눠주는 사전선거운동 여부도 단속 중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 등 후보자 비방행위는 선거종결 때까지 단속 대상이어서 ‘댓글’ 작성 시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또 후보당사자들 간 언론매체를 활용한 무차별 네거티브 공세와 고소·고발을 이용한 무고 등 행위도 포함된다. 공무원들의 선거 개입 여부도 주요 감시대상이다.

최근 스마트폰의 급증에 따른 단문송수신서비스인 트위터(Twitter)의 선거법 위반 여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선관위가 제동을 걸면서 딜레마로 부상했다. 예비 후보등록자들의 ‘트위터 정치’가 확산중이지만 선거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홍보물이나 ‘기타 유사한 것’을 게시·배포할 수 없다고 규정한 선거법 93조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방선거에 후보로 나설 경우 여전히 수억~수십억 가량의 선거비용이 드는 구조적 틀에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실제 정치권 일각에선 거의 불문율로 통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충격을 던졌던 경남 양산의 오근섭 시장도 과거 선거전에서 60억 가량을 빌려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돈 선거는 일단 점화되면 겉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되는 특성을 지닌다. 어떤 후보가 불법 행보에 나설 경우 여타 후보들도 선거전에서의 승리를 위해 무의식적으로 편승하는 ‘도덕 불감증’이 여전히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 지방선거 때마다 거의 반복되는 구조적 병폐로 지목되고 있으면서도 해결점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이러한 도덕 불감증과 당선만 되고 보자는 근시안적 돈선거는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민선 1~4기 지방선거에서 33명의 지방자치단체장이 당선무효 처분을 받았으며, 지난 10년 동안 재보궐 지방선거 경비는 1천473억5천만원이나 된다.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지방차치단체의 경우 타격은 더욱 크다. 보다 못한 주민들이 원인을 제공한 지방자치단체장이 재선거비용을 부담하라며 법적 소송을 제기했으며, 국회에서도 재선거비용 환수를 법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이다. 이와 같이 당선자의 낙마가 재보궐 선거로 이어지고 이는 행정 공백과 막대한 혈세 낭비로 귀결되는 것도 큰 문제다.

 

4. 법정(法定)비용과 법외(法外)비용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때마다 후보가 쓸 수 있는 법정선거비용 상한액을 정하는 것은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많은 후보가 선거비용 제한액만큼만 쓰고는 당선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유권자들도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진다고 믿지 않는다. 1994년 제정된 이후 수차례 개정을 통해 보완된 공직선거법은 '돈 선거'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으나 현실은 여전히 돈에 오염된 선거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전남도의 경우 광역단체장 선거의 법정선거비용은 11억7700만원, 기초단체장인 시장·군수는 평균 9천257만원이며 광주시장은 5억800만원이다. 하지만, 후보들이 정말 이 범위 내에서만 돈을 쓴다고 믿는 유권자는 거의 없다. 특히 군 단위의 경우 후보들은 깨진 항아리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들어가는 선거비용에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현행 선거법에서는 기부를 권유하거나 요구하는 행위까지 처벌하고 있으며 후보자로부터 돈을 받은 유권자는 받은 돈의 10∼50배를 과태료로 물도록 하고 있으나 돈 선거의 악령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선거풍토가 바뀌지 않은 때문이다.

전남지역 기초단체장에 도전하고 있는 한 후보는 “선거 때마다 느끼지만 일종의 선거 브로커를 통한 금품제공 요구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며 “표를 돈으로 사겠다는 후보도 문제지만 한 표가 아쉬운 후보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유권자가 존재하는 한 돈 선거로 인한 재보궐 선거는 계속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문제는 법정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 합법적인 선거 관련 비용과 음성적으로 살포되는 비용이다. 이 규모는 쉽게 추산하기 어렵지만 선거 전문가들은 최소한 법정 비용의 4~5배, 많게는 10배까지도 추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번 선거에서는 각 당이 상향식 공천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당내 후보 경선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당내 후보 선출 비용은 정당이 집행한 행사 준비 비용과 각 후보가 사용한 비용 등이 모두 법정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1만여명의 후보를 뽑는데 3만여명이 출마했다고 치더라도 이들이 사용한 경선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가 될 것이다. 특히 영·호남 등 특정 정당의 당내 경선이 본선거 보다 더 중요한 지역에서는 당내 경선 비용이 본 선거 비용을 훨씬 웃도는 경우도 있다는 게 명약관화하다.

다음으로 1만여명의 후보가 설치한 선거사무소나 연락소 유지 비용은 선거기간만 계산해도 1곳당 대략 1000만원에 달하지만 법정 비용에서 제외된다. 연구소나 산악회등 명목으로 유지되는 7000개가 넘는 사조직은 본격적인 선거 3~4개월 전부터 월 1000만원 가량의 관리비가 사용되지만 역시 비공식적인 비용이다. 게다가 광역단체장 후보의 경우 수십 명의 참모를 거느리고 장기간 광범위한 조직을 관리하는 게 정례화 돼있어 실제 이들이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 얼마나 사용했는지도 알 수 없다. 이같이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 음성적 자금을 선거 전문가들은 1조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초나 광역의원의 경우에는 공천과정에서부터 돈에 관련된 잡음이 들리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선 '기초의원 1억원, 광역의원 3억원, 기초단체장 5억원 이상' 이란 공천 헌금 기준이 공식처럼 들먹거려지기도 한다.

 

5. 받아 먹고 보자는 풍토와 구조적인 허점

농촌지역에서 돈 선거가 계속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기초·광역의원이나 단체장 선거뿐 아니라, 축협, 농협 등 조합장과 마을금고 이사장 선거 등, 수많은 선거를 통해 사조직을 이용한 돈 선거 경험이 훈련되고 축적된다는 점이다. 여러가지 형태의 사조직들은 선거철이 되면 후보에게 금품을 요구하거나 거꾸로 후보한테서 금품선거를 요구받게 되고, 여기에 전문 선거꾼이 끼어드는 경우도 있다. 각종 선거에서 시골 민심이 학연·지연·혈연(문중) 등으로 엮여 파벌화되면서 이들이 돈을 받지 않으면 다른 쪽을 찍는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 되버린 것이다.

둘째로는 꼬리 자르기가 가능한 선거법의 허점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잡힌 사람이 혼자 뒤집어쓰고 후보자가 직접 개입한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후보자는 처벌받지 않을 수 있게 되어있다. 후보자의 배우자나 선거 사무장, 회계책임자가 벌금 300만원 이상을 받으면 당선무효가 되지만, 후보들이 주로 활용하는 사조직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법규는 미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허점은 실제로 상당히 악용되고 있으며 걸린 사람이 재수 없어 하는 상황마저 발생하고 있다.

셋째로 노인 인구가 많은 농촌이 아무래도 돈 선거 문화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농촌에서는 ‘후보자들은 당선되면 시골에 찾아오지도 않을 사람들이니 선거 때 뭐라도 받아야 한다’는 인습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6. 해결방법은 없는가

- 촘촘한 법망보다 선거문화 변혁이 우선

공직선거법은 후보자와 가족, 정당의 기부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기부를 권유하거나 요구하는 행위도 처벌한다. 후보자로부터 돈을 받은 유권자는 받은 돈의 10∼50배를 과태료로 물어야 하며, 후보자에게 주례를 부탁해서도 안 된다. 선거법에 금지와 처벌 규정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를 어기는 일이 잦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하다. 아무리 법의 그물이 촘촘해도 선거풍토가 달라지지 않고는 '돈 선거'가 사라지기 어려운 이유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21일 대전의 한 호텔에서 중앙 및 전국 위원회 간부 500여명을 모아 놓고 대책회의를 가졌다. 가장 강조된 것은 '돈 선거' 근절이다. 선관위가 언론 및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 유권자 의식개혁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기로 한 것은 법을 통한 단속과 규제 못지않게 선거문화의 변혁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정당의 상향식 공천제도와 선거공영제 정착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

공천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정당의 당직자들에게 공천헌금(특별당비 명목으로)을 내는 것도 큰 문제이다. 즉, 공천의 민주화가 선행돼야 돈 선거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적용단위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실질적인 의미의 정당공천배제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또한 비용이 들어가는 일체의 선거사무를 국가가 맡는 '완전한 선거공영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 공명·정책 선거로 바꿔야

돈 선거를 감시하고, 인신공격을 일삼는 후보를 응징하는 것은 물론, 실현 가능성도 없는 공약을 내놓지 못하게 눈을 부릅떠야 할 최종적인 책임은 유권자에게 있다. 유권자들이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못해 도덕성과 자질이 부족한 후보자가 당선된다면 결국 그 피해자는 유권자에게 돌아간다. 후보자들이 유권자의 눈이 무서워 불법선거자금을 쓰지 못하고 인신공격을 해도 통하지 않으며 선심성 공약에 대해 추상같은 질타가 걱정된다면 선거풍토도 달라질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나 공직자의 자질은 유권자의 수준과 비례한다.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이 깨어있어야 정치발전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 스스로 금품 거부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쳐야 하고 언론도 유권자 변혁운동을 벌일 것을 촉구한다. 지방선거의 모든 후보자들이 지금부터라도 유권자들에게 단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 이번 선거부터는 선거 때 많은 돈을 쓰고 나서 단체장에 당선돼 선거자금을 보상받고자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제발 차단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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