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욕주의자와 창녀의 교제-제논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를 준수하고 인내하며 극기(克己)하는 가운데 덕을 실천하려는 사람과 어차피 한 번 주어진 인생인데 즐겁게 살다 가면 그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이 가운데 제논(Zenon)은 전자에 속한다.

 제논은 스토아학파(금욕주의)의 창시자로서 본래 크게 성공한 장사꾼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배가 침몰하여 엄청난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리하여 아테네 거리를 배회하다가 책방에 들렀는데, 거기서 무심코 한 권의 철학 책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 책을 읽고 나서 평생 철학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배의 침몰이 나에게는 오히려 아주 유익한 사건이었다.”고 자랑하였다고 한다.

 제논과 그의 젊은 제자들이 모이는 장소가 얼룩덜룩하게 채색된 주랑(Stoa poikile-붉은 색이 칠해진 복도)이었기 때문에 그 학파는 스토아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제논은 항상 엄격하고 준엄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매우 특이했던 것 같다. 장딴지가 비록 굵기는 하였으되 건강한 체격은 아니었고, 오히려 약간 수척한 편이었다고 한다. 항상 머리가 갸우뚱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자세였는데, 이러한 모습은 그리 크지 않은 귀 때문에 특히 눈에 띄었다.

 겉으로 조금 어두운 분위기를 지녔던 제논은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다정다감하고 품행이 단정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에게는 많은 무리의 젊은 추종자들이 있었고, 마케도니아 왕은 아테네에 머물 때마다 그의 강의를 빠뜨리지 않고 경청하였다고 한다. 아테네인들이 그에게 도시의 열쇠를 맡겨 보관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시민들은 그에게 황금 월계관을 씌워주었고, 그의 명예를 찬양하기 위해 동상을 세웠다. 또한 그가 살아 있을 때 이미 그의 묘비를 세워 주었다.

 그는 사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먹고 마실 때에도 절제하거나 삼갔고, 요령껏 잔치 자리를 피해 다녔다. 지나칠 정도로 수줍음을 타서 자신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좋아하는 음식은 녹색 무화과와 빵, 벌꿀이었고 여기에 딱 한 잔의 포도주를 곁들이면 그만이었다. 그의 외투 역시 형편없이 초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2세까지 살았던 것을 보면 그의 절제된 생활방식이 오히려 건강을 유지하게 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도 한두 번 창녀와 교제를 했다는 설이 있다. 물론 그것이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로 보이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제논은 참된 행복이란 쾌락에서가 아니라 덕을 실천하는 데에서 얻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덕이란 밖으로 드러난 행위에 있다기보다도 그 사람의 정신적 태도에 달려있다. 가령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건강이나 재산, 명예, 권력 등은 그 자체로 선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또 악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따라서 그것들은 어떠한 도덕적 판단도 내릴 수 없는 중립적인 것, 즉 아디아포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중립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데도 그러한 것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가령 건강이 나빠지는데 신경 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이며, 가난에 허덕이는데 돈에 초연할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그러한 것들에 완전히 무관심하려면 꾸준히 수양을 쌓아야 하는데, 이는 오직 수양을 통해서만 외부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 아파테이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동심을 얻기 위해서 스토아 학자들은 죽고 사는 문제까지도 가볍게 보았으며, 심지어 호흡을 멈추거나 의지력에 의해서 자살한 자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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