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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사(鄕思), 그 숙명 같은 불치(不治)의 병(病)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2010년 12월 03일 (금) 10:01:44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기나긴 삶의 여정에 지친 내 마음 하나 편안히 눕힐 수 있는 영혼의 안식처는 어디일까?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을 열정으로 불태우던 나날들, 숱하게 피고 진 세월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인연들과 사연들, 그 오랜 세월 속에서 얻어진 명예와 사회적 지위, 내적 성장의 성과물들과 학문적 업적들... 무엇인지도 모른 채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 온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보면 그 어떤 것도 내 지친 영혼 하나 편히 쉬게 할 수 있는 거처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지난 토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때 이른 어둠이 짙게 깔리는 시간 속에 나를 묻고 있을 무렵 나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어대며 주인을 부르고 있었다. 발신인을 보니 우리 몇 몇 후배들이 영원한 영광의 누님이라 칭하고 따르는 김 모 선배님 전화였다. 그렇잖아도 아침에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했던 터라 급히 폴더를 열었다. “강선생, 나야 별일 없지?” “네 잘 있습니다. 아침에 전화 주셨는데 못 받아서 죄송해요” “응 그렇잖아도 대전의 병원에 계시는 정박사님한테 한 번 다녀오자고 전화 했었는데 통화가 안돼서 그냥 우리끼리(조00, 서00, 김00) 넷이서 갔다 왔어, 뵙고 보니 사람은 알아보는데 말도 못하시면서도 고향 땅 영광으로만 가시고 싶어하는 눈빛을 남겨두고 돌아왔어, 그러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편치가 않네” 금년 95세 되신 정종 님은 “나는 강의를 하다 쓰러져 죽는다면 내 생의 가장 큰 보람이 되겠고, 고향 땅 영광에서 그 생을 마감하고 싶노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 하셨다. 그런 분이 건강이 악화되어 쓰러져 누우신 뒤에 머나먼 타관의 병상에서 “돌아가자, 돌아가자 내 고향 영광으로 돌아가자”만 되뇌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온 후배들의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1988년 영광의 몇 몇 문학 동료들과 함께 광주 백운동에 서재를 차려두고 계시는 현암 이을호 박사님을 찾아갔을 때 현암께서도 당신의 고향인 “영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노라”며 아직 어리고 힘 없는 후학들 앞에서 말끝을 흐리셨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당신이 평생을 모아 온 약 3만여권의 장서(藏書)와 함께 담양에다 영혼의 안식처를 꾸렸다. 금년 89세 되신 서울의 의당 김용범 화백께서도 건강이 좋지 않아 신음 하시며 늘 당신의 고향인 영광으로의 귀향만을 꿈꾸고 계신다. 향사(鄕思), 숙명 같은 이 불치의 병고를 어찌해야한단 말인가?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자가기 태어난 모천(母川)을 찾아서 수만리 머나먼 물길을 목숨 걸고 헤엄쳐 오는 연어가 있다. 본능에 의해 자신의 모태를 찾아가는 동물들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들의 향사(鄕思)야 오죽하겠는가?

  결혼을 하자마자 사랑하는 아내를 고향집에 홀로 남겨두고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니며 방황하던 끝에 늙고 지친 육신과 영혼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온 페리퀸트에게 있어서 그 때까지 뜨개질을 하며 하얀 백발이 된 채 자신을 기다려준 솔베이지의 무릎은, 삶의 고달픈 여정에 지친 페리퀸트의 영혼을 편안히 잠들 수 있게 한 고향 바로 그 것이었다.

  소년(少年)은 희망에 살고 노년(老年)은 추억에 산다고 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젊은 날의 삶이 아무리 화려하고 열정적인 것이었어도 죽음을 목전에 둔 노년에 있어서는 결국 자신의 탯줄을 묻은 고향 그 이상의 안식처는 없는가보다. 그리고 인생 말년에 고향 그리는 마음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터득한 이성과 감정에 의해 균제(均濟)되고 정제(淨濟) 된 정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것은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때 묻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는 조국을 떠나봐야 조국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알수 있다”는 세속의 말처럼 고향을 떠나서 살아봐야만 진정한 고향의 소중한 가치를 알 수 있으려나?

 

遠別鄕關四十秋(원별향관사십추) 고향땅 멀리 나가 사십년이 흘러갔고,
歸來不覺雪盈頭(귀래불각설영두) 지금까지 머리카락 희어진 것 몰랐네.
新基草沒家安在(신기초몰가안재) 샛골은 풀에 묻혀있으나 집 그대로 있고,
古墓苔荒履跡愁(고묘태황리적수) 무덤은 이끼로 황량한데 발자취만 슬프네.

心死恨從何處起(심사한종하처기) 마음은 비웠는데 한은 어디서 일어나는고?
血乾淚亦不能流(혈건루역불능류) 피는 말라버렸고, 눈물조차 흐르지 못하네.

孤丈更欲隨蕓去(고장경욕수운거) 외로운 나, 구름 흐르는대로 또 가려할 제
已矣人生傀首邱(이의인생괴수구) 수구초심이라는 옛말 부끄러울 뿐이네.
-草衣禪師 歸故鄕詩(초의선사 귀고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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