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성 상일봉사학교장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었다“

영광 계송리 출신으로 영광에서 교직을 출발해 서울 성동교육장 등을 지내

 

정용성 상일봉사학교장은 영광읍 계송리 출신으로 1952년에 교단에 첫발을 디딘 이래 서울 신자초등 교장 등을 거쳐 1998년 서울성동교육장으로 정년퇴직했다.

정 교장은 배움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일봉사학교’를 이미 현직에 있던 1975년부터 박봉을 털어 운영해 왔으며, 퇴직 후에는 학교 운영에 전념하고 있어 이 시대의 진정한 교육자이다.

광진구 자양동 ‘상일봉사학교’는 배우지 못한 설움을 안고 살아온 이들이 모여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밤낮으로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는 곳이다. 75년 강동구 강일동 비닐하우스에서 야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4천5백여 명의 학생을 배출시킨 이 학교는 현재도 150여명의 학생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다.

무학년 무학급제인 상일봉사학교는 한글을 모르는 사람부터 중퇴자,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을 위한 초등반, 중등반, 고등반은 물론 컴퓨터반과 영어회화반까지 있다.

2009년 교육성과로 원거리 거주자 및 장애인을 위한 강의 내용을 카페(네이버)에 개설하여 현재 전국 240,272명의 회원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며, 중입 검정고시 전원 합격, 한자 급수 응시 전원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뤄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자리를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하 공간에는 독서와 영화, 노래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신나는 노래 주민 문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인성교육을 위해 본교 부설로 전남 영광에 농촌 문화 체험마당도 준비되어 있다.

‘상일봉사학교’는 수업료가 없고 입학식이 없고 교사 월급도 없다는 3無학교이다.

학교운영비는 서울시내 300여 학교와 광진구청 등 기관, 개인독지가의 후원금으로 마련하고 있으며, 전·현직 교사와 대학교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원봉사하면서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신념으로 평생을 교직자의 길을 걸어 온 정 교장은 60년 남짓 사재를 털어 어려운 제자들을 돕고 배울 시기를 놓친 어른들에게도 가르침을 베풀어 온 ‘상일봉사학교’는 그의 삶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은 아마 아버님이 항상 주위에 못 사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렸을 적 아버지가 마당에 쌀을 펼쳐 놓고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자란 정 교장은 실제 자신이 신문 배달을 하면서 어렵게 생활비를 벌면서부터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한다.

1952년 광주사범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정 교장은 모교인 영광초등학교의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이 때 나이 스무 살도 안 됐던 젊은 그는 결심대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6.25 직후라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유난히 많던 무렵이어서인지, 월급만으로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것이 힘에 부쳤던 정 교장은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한 초등학교 근무할 때 양계로 돈을 벌기 위해 병아리를 키워서 ‘병아리 선생’으로, 또 다른 학교에서는 제자들이 중학교 진학을 돕기 위해 직접 회양목을 길렀다고 해서 ‘회양목 선생’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정 교장은 75년 서울 상일초등학교에 전근하면서 이 지역의 철거민촌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당시 철거민촌 학생들의 중학교 진학률은 80%에 불과할 정도로 가정에서 버림받거나 탈선한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 교장은 그 해 인근 하일동 철거민촌에 6평짜리 비닐하우스에 ‘하일 새마을 야간 중학교’를 열고 청소년들을 위해 검정고시 교육을 시작했다. 가마니를 깔고, 책상도 없이 시작한 봉사학교가 문을 연 지 한 달이 지나자 소문을 타고 100여 명이 몰렸다. 호응이 좋자 청소년뿐 아니라 문맹자들을 대상으로 한글 계몽 교육도 펼쳤다. 야학 공부방으로 활용되던 비닐하우스는 금세 6개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봉사학교가 그린벨트 구역이어서 구청에서 2개월에 한 번씩 강제로 철거하는 바람에 그래도 또 짓고, 또 헐리고, 또 짓고 그렇게 20여 년간 구청과 씨름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엄청 부족한 비용은 아내인 김희옥씨가 그를 도우며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길거리로 화장품 행상을 나설 정도이다.

부부는 땀과 눈물로 마련한 집을 팔아 빚을 내서 광진구 자양동에 상일봉사학교의 새로운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35평 정도의 넉넉지 않은 공간이지만 지금도 배움에 목말라 있는 이들로 북적이고 있다.

부부가 봉사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상일봉사학교를 거쳐 간 4,500여명의 학생 중 4,000여명이 검정고시를 통과해 학력을 인정받고 성실하게 사회 활동에 임하고 있다.

정 교장은 영광읍 계송리 고향집을 수리해 농촌체험학습장을 만들었다. 상일봉사학교 영광 캠프는 지난 97년 시작하여 2002년과 2005년 2006년에 이어 매년 개최하고 있다.

영광의 체험학습은 2박 3일 동안 부적응 청소년들의 인성교육과 농촌체험으로 진행된다. 지금까지 200여명이 다녀간 캠프는 정 교장의 고향 고택인 계송리 월곡마을에서 진행되며 불교유적지 견학 및 공동체 생활 적응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정 교장은 2009년부터 알뜰 휴가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광 계송리 집을 누구든 전화 한통화면 ‘무조건’ 빌려주어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용성 그는 영광이 낳은 봉사의 표상, 나눔의 실천자가 분명하다.

 

‣정용성 상일봉사 학교장은

-1933년 영광읍 출생

-영광초등 및 서울시내 학교장

-성동교육장

-3기 서울시 교육위원

-서울 수상자회 회장

 

‣주요 경력/수상

-1991 보신각종 인사

-1981 정용성 교장 대통령 표창

-1982 제1회 한국 교육자 대상 교장 수상

-1991 제3회 서울 시민대상 수상

-2001 국민에게 희망을 준 157인 선정

-2001 국립방송(행복을 주는 사람들) 출연

-2005 제17회 아산 봉사 대상 수상

-2007 KBS-TV 희망을 심는 사람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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