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기/ 사회복지법인 난원,영광노인복지센터장

세상살이가 각박한 탓인지, 아니면 사는 게 힘들어서인지 요즈음 뉴스는 마음 아픈 일로만 가득차서 속이 편치 않다. 그나마 지난 17일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 만이 국민들의 답답하고 팍팍한 가슴을 통쾌하게 해주었을 뿐이다. 이날 김연아의 활약은 개인적으로 3년 만에 다시 왕좌를 되찾은 데에만 그친 게 아니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 티켓을 3장이나 확보함으로써 후배들에게 가장 화려한 국제무대의 길을 터주는 기염을 토했다. 국민들 입장에서 환호와 감동이 물결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좋은 소식은 그 뿐이었다.

3월 9일, 경북 포항에서는 산불로 1명이 숨지고 가옥 60여 채가 불타는 등의 큰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틀 뒤인 11일, 경북 경산에서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한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다음날 12일엔 광주에서 우울증을 앓아온 40대 주부가 자녀 2명과 함께 투신자살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이 벌어졌다. 하나하나가 가슴을 저미게 하는 뉴스들을 접하다 보면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서울 지경이다.

먼저, 생활고와 우울증을 겪던 40대 주부의 투신자살 소식은 우리에게 큰 안타까움을 주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우울증, 그리고 자신의 신병을 비관했던 그녀의 선택은 참혹했다. 아파트 14층에서 어린 남매를 차례로 던진 후 자신마저 뛰어내린 것이다. 아파트 CCTV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남매가 버튼을 누르며 장난을 치는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얼마 뒤 자신들에게 닥칠 운명을 알 리 없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자녀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엄마를 어느 누가 용서할 수 있으랴! 또한 자신이 낳은 순간 이미 자신의 소유가 아닌 자식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 버린 천인공노할 짓을 어느 누가 편들 수 있으랴! 헌데 욕이라도 내뱉으면 마음이 후련할 줄 알았으나 왜 이리 찜찜한지. 문제는 그녀에게 천륜을 저버린 비정한 엄마로 무작정 낙인을 찍어도 될 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데 있다. 10년째 앓아 온 마음의 병인 우울증에, 극심한 생활고까지 겹쳤을 그녀가 기대기엔 우리의 사회적 안정망이 너무 허술했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니 필자도 뭔가 해야 될 게 퍼뜩 하나 생겼다. 이참에 필자가 모시고 있는 어르신과 그분들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우울증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육 및 상담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끔찍한 소식이 경산에서도 들려왔다. 학교폭력으로 한 고등학생이 짧은 생을 자살로 마감한 사건이다. 또래 학생 7명으로부터 오랫동안 폭력에 시달렸던 그는 죽기 직전까지 얼마나 외롭고 무서워했을까! 자신의 고통을 어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여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그 어린 학생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영혼을 멍들게 하는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 일이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내 놓은 대책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자살한 학생이 유서를 통해 “학교의 CCTV가 소용이 없었다.”고 하자 교육부의 대책 중 하나가 “전국의 학교에 CCTV를 늘리고 화질을 개선하겠다”고 했다니 말이다. 피해 학생들이 원하는 건 CCTV의 렌즈가 아니라 어른들의 관심이란 걸 왜 모르는 걸까. 마음이 답답한 이가 어디 필자뿐이랴. 따라서 필자부터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동행하기 위해 조만간 청소년지원센터에 찾아가 자원봉사자로 등록할 생각이다.

한편 지난 9일 포항에서 일어난 큰 산불도 우리 지역이 농어촌이라는 점에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 중학생의 철없는 불장난으로 시작된 이 불은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산 전체로 퍼졌다. 맹렬한 불길은 인근 주택까지 집어 삼켜 1명이 숨지고 14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로 이어졌다. 사망자는 다름 아닌 거동이 불편했던 79세의 노인으로 이날도 미처 집을 빠져나오지 못해 변을 당했다고 한다. 고령과 질병을 지닌 노인들은 당연히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들이 닥친 화마 앞에서 이 어르신은 얼마나 놀라고 황망했을까!

필자의 머리에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떠올랐다. 다음 날, 우리 지역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요양보호사 등 20여 명께 산불 발견 즉시 119에 신고한 뒤 곧바로 사무실에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우리 센터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 100여분의 주소지 부근에서 산불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어르신의 안부를 살피고 유사시엔 대피를 돕기 위해서다. 물론 곁에 든든한 소방관들이 있지만 사회복지사로서 뭔가 해야 될 것 같아서였다.

필자는 잘 알고 있다. 우리 사회의 그늘을 걷어 내기에는 필자의 작은 고민과 노력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다는 걸.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더더구나 없지 않은가! 외로움보다 더 무서운 건 없다. 우리 모두, 타인의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 한 장씩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면 어떨까? 더 이상 고통과 상처 때문에 혼자 우는 사람이 없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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