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현! 우리는 그를 열사라 부른다. 그는 1953년 영광 불갑에서 태어나 지난 1980년 광주민주항쟁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서 구 도청앞 집회 등을 통해 5.18민주항쟁을 주도했다.

박 열사는 총학생회장시 병영집체 거부투쟁과 어용교수 퇴진투쟁을 포함해 야학운동, 빈민운동, 학생운동, 청년운동, 문화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지역 운동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고 5·18 민주화운동의 불씨가 된 민족민주대성회를 주도했다.

박 열사는 5월 16일까지 교내 등지에서 전두환 퇴진, 비상계엄 해제, 어용교수 퇴진, 언론 자유 보장 등을 주장하며 집회와 시위를 통해 대정부 투쟁을 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및 계엄법 위반)로 수배됐다.

박 열사는 이후 2년 동안 숨어 지내다가 1982년 체포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 그해 9월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로 징역5년을 선고받아 수감도중 5·18 진상규명과 교도소 내 처우 개선을 주장하며 40일간의 옥중 단식투쟁 끝에 1982년 10월 12일 숨을 거두었다.

당시 경찰은 가족들을 감금하고 시신을 탈취해 그의 고향인 불갑 원불교당에서 장례를 치르게 해, 지역에서는 몇몇 청년들만이 그의 장례를 참석했을 뿐이다. 그리고 불갑면 쌍운리 불갑초등학교 앞 야산에 묘지를 만들었으나, 1987년 망월동으로 이장했다.

영광지역에서도 민주화의 선봉에 서다 숨진 박관현 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영광군청년단체협의회가 주도하여 2001년 11월 11일 그의 묘소가 있던 길목에 추모비를 건립했다.

그러나 주변 환경 조성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이곳을 지나면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로부터 비난이 이어지자, 군과 영광JC가 나서 오는 5월중에 불갑테마공원으로 옮길 계획이다.

최근 박관현 열사의 명예회복이 가능하도록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그의 부친이 청구한 박 열사의 재심 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잘못된 법을 고쳐야 한다는 여론 때문이다.

법원이 기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토대로 입법적 보완은 당연하다.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박 열사의 한을 풀기위한 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 영광의 아들 박관현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영광에서도 추진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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