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전남다문화가족지원센터 연합회장

풍교야박(楓橋夜泊)

중국내 한 자치구와 우리 영광군 간의 다문화 사돈국() 결연을 추진하기 위해 저장성 언저우시를 방문하는 길에 잠시 틈을 내어 중국의 유명한 사찰 한산사를 둘러보았다.

한산사는 몇 해 전, 한 워크삽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마지막 일정으로 관광을 했던 곳이었기에 두 번째 방문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일행이 머물렀던 저장성과는 쾌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피곤해하는 일행을 다독여가면서까지 한산사를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었던 것은 오래전 풍교 아래에 앉아 한 시인이 풀어 놓았을 절절한 객수(客愁)를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중국의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에 있는 한산사는, 장계의 시 풍교야박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한 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리 아래에서 시름에 겨워 잠 못 이루는 한 나그네의 귀에 한 밤중 애절하게 들려오는 한산사의 종소리가 한 편의 시로 읊어지면서 한산사는 일약 세계적인 사찰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무엇이든지 크게 하고 보는 중국인들의 대륙기질 탓으로 중국의 많은 절이 웅장한 건축물과 거대한 불상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한산사는 비교적 작은 절에 속한다.

그러나 장계의 시가 알려진 이후 한산사는 절의 규모와는 달리 소림권법으로 유명한 소림사와 함께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이 중국을 관광할 때 꼭 찾아보는 유명 고찰이 되었다.

월락오제상만천(月落烏啼霜滿天)

강풍어화대수면(江楓漁火對愁眠)

고소성외한산사(姑蘇城外寒山寺)

야반종성도객선(夜半鐘聲到客船)

달은 저물고 까마귀 슬피 울어 천지에 찬 서리만 가득하고,

강풍교 고깃배의 희미한 불빛아래 시름안고 졸고 있는데

한밤중 고소성 밖 한산사의 종소리가 처량하게 들리는 구나

당나라 때 연거푸 과거시험에 낙방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장계가 한산사 근교의 강풍교라는 다리 아래 작은 배안에서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한 밤중에 한산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처량함을 읊은 짤막한 시이다.

우리 일행은 시간에 쫓기느라 시인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한산사 주변 기념품점에서 파는 작은 종 하나를 사들고 나오면서 유명인의 시 한편이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중국인들의 상술에 감탄을 해야만 했다.

 

 

시인조운 생가와 석류나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우리 고장이 낳은 천재시인 조운의 석류라는 시다.

조운의 시는 장계의 시에 비해 무엇이 부족했을까?

빠개 젖힌 가슴을 통해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애틋함이 녹아있는 이 시는 어찌하여 우리 영광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은 체 귀국 후 조운 생가를 찾았다.

주변을 둘러싸고 서 있는 현대식 건물들의 틈바구니에 고도처럼 갇혀 있는 생가는 말그대로 처참했다.

녹슬고 부서진 대문에 엮어놓은 전깃줄을 풀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펼쳐진 상황은 눈을 더욱 의심케 했다.

헛간채는 기왓장이 내려앉아 서까래가 훤히 드러나 보였으며 한 쪽에는 비를 막기 위한 것이었는지 볼썽사납게 함석을 뒤집어 써 동화속의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흉물로 변해 있었다.

안채역시 지붕이 부서지고 떨어져 나갔으며 한쪽 기둥마저 주저앉아 대문 밖에 세워진 기념비만 아니라면 이 곳이 시인 조운이 살았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시인이 시를 쓰며 사색을 즐겼을 법한 정원은 잡초만 무성하여 풀과 수목을 분간키가 어려울 지경이었으며 영광의 대표적 문인들의 시가 새겨진 시비는 한 쪽에 내팽개쳐진 체 나뒹굴고 있었다.

더더욱 황당하고 당혹스러웠던 것은 조운으로 하여금 명시 석류를 탄생하도록 한 100년 된 석류나무가 처참하게 베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단순 근로자의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문학의 자산을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다.

후배 문인으로써 시인의 석류나무를 지키지 못했다는 심한 자책감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고통스러웠다.

왜 우리는 한산사의 종소리를 경제적 가치로 활용하는 중국인들처럼 석류라는 그 걸출한 시를 문화적, 경제적 자산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언제쯤 시인의 가슴에 알알이 타오르는 석류의 붉은 뜻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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