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전라남도다문화가족지원연합센터장

-일본군 위안부 황선순 할머니의 명복을 빌면서.- 

 

병자호란(丙子胡亂)과 환향녀(還鄕女)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스스로를 황제로 칭했던 후금의 태종이 1636년 겨울, 20만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물밀듯 쳐내려오는 청군을 막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해야 했던 인조는 결국 삼전도라는 곳에서 치욕스런 항복을 하게된다.

정묘호란에 이어 청이 2차로 침략한 병자호란이다.

인조의 삼전도 굴욕으로 전쟁은 끝이 났으나 그 피해는 힘없는 백성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만 했다. 바로 볼모와 양민 납치였다.

납치한 민간인을 전리품쯤으로 여긴 청은 속가(贖價) ,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많은 양민들을 납치했지만 그들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몸값 지불이 어려웠던 부녀자들은 결국 노예로 팔려가거나 병사를 했는데 속가를 치르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더라도 차라리 죽는이만 못한 치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당시 사회의 주도층인 양반들은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기보다는 환향녀라는 굴레를 씌워 사시 눈으로 바라보았으며 심지어 정절을 중시했던 남편들은 일방적으로 이혼을 해 내쫒기도 했다.

모진 고초를 겪어가며 피맺힌 한을 안고 돌아온 그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던 환향녀가 남의 남자와 잠자리를 한 여인을 지칭하는 화냥년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는 것은 힘없는 나라에 사는 민초들의 아픈 역사가 아닌가 싶다.

2차대전과 일본군 위안부

2차대전이 막마지에 이르던 1944년 말, 일본 후생성은 이른바 <여자정신대 근무령>이라는 것을 공포하고 12세에서 40세까지의 조선여성을 강제로 징집해 전장으로 끌고 갔다.

일제는 그 훨씬 이전부터 조선여성들을 군수공장이나 매춘굴에 팔아넘기는 행위는 하고 있었는데 38년 초부터는 전쟁확대와 함께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한다는 명목으로 법령을 공포하여 합법적 정책으로서 수행되기 시작하면서 조선여성의 위안부 징발이 극에 달하게 된다.

이 법을 위반할 경우, 국가총동원법 제6조에 의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천인공노할 악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여성들은 일제의 협박이나 속임수, 강압 등에 의해 무자비하게 끌려갔으며 타이, 버마 등 태평양 일대의 국가와 중국 등으로 보내져 낮에는 탄약운반이나 취사요원, 세탁부, 간호부 등으로 밤에는 일본군 위안부로 혹사를 당했다.

일본군 위안부 숫자는 대략 17~20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중 80~90%가 조선여성이었다고 한다.

전장에 끌려간 위안부들은 <니쿠이치>라 하여 일본군 29명을 조선여성 1명이 상대하도록 하였으며 일본 패망 직전에는 1명당 1백명까지 상대를 해야 했을 만큼 그들의 인권은 처참하게 유린당한 체 혹사를 당했다.

일제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군은 패전 후 범죄사실을 감추기 위해 이들을 방공호나 동굴에 몰아넣고 생매장시키거나 총살을 했으며 정글 속에 버리고 도주를 해버렸다.

미군에 의해 일부 살아남은 위안부 할머니가 귀국을 하기도 했으나 그들의 삶은 사회적 외면 속에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유교적 관념이 뿌리깊었던 우리나라에서 그들은 또 다른 환향녀가 되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물론 깊은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던 것이다.

황선순 할머니의 명복을 빌면서

지난 126, 일본군 위안부였던 황선순 할머니가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3년 열일곱 살의 나이로 일제의 속임수에 속아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였다.

황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몇 년 째 일본대사관 앞에서 절규를 하고 있었다.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뼈아픈 역사의 산 증인이었기에 황 할머니는 온 몸을 던져 그 아픈 역사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다 한 많은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이제 55명이었던 생존 위안부할머니는 황 할머니의 타계로 54명으로 줄었다.

남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염원이 살아 생전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일본의 철저한 반성과 함께 우리사회의 지대한 관심도 함께 기원을 한다.

더불어 힘없는 나라의 민초로 태어나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한 맺힌 삶을 살다 가신 황 할머니의 명복을 빌면서 다시 한 번 역사가 증명해 주는 교훈을 되새겨 본다.

과거든 현재든 힘없는 나라는 백성을 지켜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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