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등을 타고 오는 절기

처서(處暑)24절기 가운데 열넷째 절기로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만큼 여름은 가고 본격적으로 가을 기운이 자리 잡는 때입니다. 처서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한다는 뜻이 되지요. 예전에 부인들은 이때 여름 동안 장마에 눅눅해진 옷을 말리고, 선비들은 책을 말렸는데 그늘에서 말리면 '음건(陰乾)', 햇볕에 말리면 '포쇄'라 했습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에서는 포쇄별감의 지휘 아래 실록을 말리는 것이 큰 행사였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 무렵은 김매기도 끝나 호미씻이를 한 뒤여서 농가에서는 한가한 때입니다. 그래서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뜻으로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고 하지요. 처서 무렵 날씨는 벼 이삭이 패는 때이기에 한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을 견주어 이를 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 무렵의 벼가 얼마나 쑥쑥 익어가는지 잘 보여주는 속담입니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라고 하는데, “처서비 십 리에 천 석 감한다라고 하거나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라북도 부안과 청산에서는 처서날 비가 오면 큰애기들이 울고 간다라고 하지요. 예부터 부안과 청산은 대추 농사로 유명한데 대추가 달콤하게 익어가기 시작하는 처서 앞뒤로 비가 내리면 대추가 익지 못하고, 그만큼 혼사를 앞둔 큰애기들의 혼수장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요즘 혼수 문제로 결혼이 파탄에 이르기도 하는 것에 견주면 대추 팔아 혼수 장만하던 때만 해도 순박했습니다. 처서비가 내리지 않아 대추 풍년이 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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