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사람 송영 선생이 14일 별세했다. 소설가인 송 선생은 1940년 영광읍에서 태어나 한국외대를 졸업, 1967년 계간 창작과 비평 봄호에 단편 '투계'로 등단했다.

이후 폐쇄된 공간에 갇힌 인물들의 삶과 의식에 대한 빈틈없는 묘사로 주목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집 선생과 황태자’(1974), ‘땅콩껍질 속의 연가’(1979), ‘지붕 위의 사진사’(1980), ‘비탈길 저 끝방’(1979), ‘발로자를 위하여’(2003), ‘새벽의 만찬’(2005) 등이 있다.

음악과 바둑에도 조예가 깊었던 고인은 음악 산문집 무언의 로망스’ ‘송영의 음악여행등을 펴내기도 했다. ‘친구’ ‘보행규칙 위반자등으로 1987년 제32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 92일 군민의날 문화행사로 향리학회에서 고인을 초청해 영광문화발전세미나를 개최키 위해 고인의 동의를 얻었으나 갑자기 지병이 악화되면서 마지막 고향 방문 계획이 불발되었다. 이때 고인께서는 몸이 우선하면 꼭 고향을 방문해 자신이 추구하는 영광문화 발전 방안을 제시하겠노라는 다짐이 귓전에 어린다.

몸이 불편해 내려오지는 못했지만 고인은 세미나에서 발표할 원고를 보내주셨다. ‘나의 톨스토이제목의 원고는 인쇄물로 만들어 세미나장에 배부되었으며, 본보 9857면에도 게재되었다.

고인은 원고에서 조운 시조를 필두로 조희관의 달관된 수필세계, 조남영, 풀잎사 정태병의 시와 동화 등,...” “최근 칠산문학회와 영광 글 모음집을 보면서 이런 선대들의 서정성과 깔끔한 솜씨들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란 일이 있다고 적었다.

이어 물론 완전한 형태를 갖춘 글이 아니었지만 영광 혼의 씨앗이 현대 영광인들의 내면에도 엄연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면서 이제야말로 그 혼을 되살리는 노력이 우리 손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며, 가장 독특하고 개성 있는 영광혼의 부활은 문학에서 그 횃불이 시작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남도문학일번지로 불릴 정도였던 지금의 영광 현실은 참담하다. 조운 선생 생가를 보존키 위한 노력도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출신 문인들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키 위한 문학 기념관건립 사업도 허공을 맴돌고 있다.

선대 작가는 물론 이을호 · 정종 박사, 송영선생까지 더해지면 영광문학관의 가치는 전국 최고 수준이 자명하다.

개발행정도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이어가는 사업이 더 중요하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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