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이번 3.1운동을 추념하는 행사는 다른 해와 느낌이 달랐다. 나라를 상징하는 태극기 때문이다. 정부 설립부터 온통 뒤틀린 시작은 아직 진행형이고 이제 이념의 중심에 국기가 등장했다. 일부 지자체에선 3.1운동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사용하는 데 현실 분열의 눈치를 살피는 양상을 보였고 행사장에서 태극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을까.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부류와 반대하는 부류로 나뉘어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애국을 외치지만 분명 한쪽은 틀렸다. 누가 틀렸는지는 역사가 말하겠지만 국민의 80%는 한쪽을 지향하고 응원한다. 지금까지 역사는 대중 다수의 의견이 옳음을 증명해 왔다. 군복과 태극기로 애국을 위장하는 행위는 대중 다수의 의견에 역행하지만 맹목의 신앙처럼 이들은 오히려 가슴이 뜨겁다. 진정한 애국은 외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음도 혹은 속고 있음도 이들은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국민을 한번 속이면 속인 정치인이 나쁘지만 계속 속으면 속은 국민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속으면서 초록은 동색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요즘 두드러지는 태극기의 수난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많이 속아 왔는지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이다.

문제는 같이 등장하는 미국기이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의사표현은 당연한 권리지만 왜 성조기가 태극기와 같이 등장할까. 혼자는 설 수 없다는 열등의식의 표현이지만 이들은 오히려 당연하고 자랑스럽다. 미국이 우방이라는 사실이 든든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지휘를 그들이 맡아준다는 사실이 믿음직스럽다. 과연 우리는 정신적 해방과 독립을 이루고 있는 것인가.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고 이념논쟁을 가져도 좋다. 제발 시위 현장에서 성조기는 내리자. 자신들은 자랑스럽고 든든하지만 올바른 정신을 가진 대다수 국민의 가슴은 자존심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강대국의 정신적 속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 민족의 자존감은 없다. 중국에서 유학하는 우리의 자녀들이 요즘 고개를 못 든다는 하소연이다. 정치인이 아닌 국민의 피나는 근검과 노력으로 국격을 간신히 올려놓았더니, 국민을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정치인들이 중국 변방 소수국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심어지던 신흥강국의 이미지는 고려 원나라 통치와 조공을 바치던 조선, 일제 강점기의 소국으로 변해버렸다. 그들에게 요즘 대한민국은 샤먼정치국미국의 속국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정권을 옹호하고 아스팔트가 피로 물들 것이라는 섬뜩한 예언까지 서슴없이 하면서 군복과 태극기를 상징으로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누구일까.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손에 들고 거리로 나온 이들이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수가 군대를 기피하고 자식들도 군대를 보내지 않은 특권층이요, 태극기는 사용 후 구겨서 가방에 대충 몰아넣는 이기적인 위선의 애국자들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군복을 입고 장병들 앞에서 훈계를 하는 염치없는 애국자들은 오늘도 이들의 추앙을 받으며 속임수 카드를 쓰고 있다. 아직도 반복 되는 속임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지러운 현 정국에 책임을 져야한다.

여기에 동조하는 소위 대권주자들은 더 이상 국민을 속여선 안 된다. 주관도 철학도 몰염치에 묻어버리고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외길을 가는 사람들이 국가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노동자를 위하면 빨갱이요 종북이고 재벌을 위한 정책을 펴면 보수라고 칭한다. 그래서 법인세를 내리고 담뱃세와 주세 등 서민 세금을 올려 보충한다. 경경유착은 필수지만 서민과는 유착할 것이 없다. 그래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죽창이라도 들고 싸우는 측은 서민이고 미리 도망가는 측은 재벌과 귀족들이다. 정치 귀족과 재벌들은 애국심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며, 스스로 보수가 되고 스스로 애국자가 되었다. 국민 절반의 자칭 보수는 이들을 추종하며 서민과 노동자 정책을 펴면 종북으로 편을 가른다. 그러나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종북자들은 북한의 세습정치를 극렬히 싫어한다. 세습하는 재벌과 언론, 정치인들을 추앙하는 부류는 오히려 자칭 보수들이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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