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갑자기 찾아온 대통령 선거에 정치권이 뜨겁다. 과거와 변함없는 2강구도 속에서 오가는 검증이 서로에겐 네가티브가 된다. 하지만 조그만 의문이라도 밝히고 넘어야하는 게 일국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절차임을 인식한다면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털고 가야할 허물이 있다면 털고 가야한다.

문제는 작은 허물이 아니라 도덕성이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노라면 분노를 넘어서 허탈하다. 좋은 집안이거나 많이 배운 사람들의 마음이 한 결 같이 이기심과 불의로 가득하다. 학연과 학식은 높은데 인품의 곡간이 텅 비었다. 부덕의 결점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마음에 없는 소리로 쓸어 덮으며 자신의 영달만을 위한 행보를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유시민 작가가 정치는 사기라고 평했지만 사기를 넘어선 욕망의 아귀다툼이다.

우리가 고대국가 이후 공부했던 경전은 사람 만드는 공부였다. 학식의 깊이는 서로 차이가 있었지만 학업의 추진 방향은 같았다. 참다운 삶을 위한 방법을 강구하면서 이()와 기()를 바탕으로 성리학은 시작되었고 시골 서생 기대승과 퇴계의 사단칠정론이라는 8년에 걸친 논쟁까지 이어진다. 조선의 한민족을 이어간 위대한 정신은 그냥 나온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 조상의 사상을 폄하하는 현대인들이 알아야할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조상의 위대한 사상이다. 그들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사서삼경 한 줄 안 읽어본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500년을 이어간 나라가 세상에 몇이나 되던가. 고구려와 백제는 700년을 살았고 신라는 1000년을 살았다. 고려는 470여 년, 조선은 500년을 살았다. 이렇게 놀라운 저력은 그들의 사상적 역량에서 나왔고 국가를 지탱하게 한 것도 사람 되는 공부의 힘이었다. 다시 말해 도덕성이 근간이 된 국가는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제강점기로 들어가던 시기는 요즘의 행태와 닮아있다. 대원군은 아들을 왕으로 내세워 권세를 노렸고 외세의 침범을 차단했다. 비선실세다. 왕비는 비선실세와의 다툼에서 살아남고자 외세를 끌어들이고 결국 그들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결과는 국가의 몰락이다. 이들이 한 결 같이 노린 것은 치부와 권력이요 사욕이다. 이들에게 국가 이전에 자신만 있었던 것이다.

이제 대통령 선출일이 불과 25일 남았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대통령은 최악이 아닌 차악을 뽑는 작업이라 했다. 최선과 차선은 없다는 의미이다. 결국 국가보다 당익, 당익보다 사익을 우선으로 하는 명예욕과 이기심 충만한 후보 중에서 선택 되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차악이라도 제대로 고르고 싶으면 자신을 얼마나 국민의 아픔을 위해 내 던지는지를 살펴야 한다. 퍼포먼스라도 좋고 보여주기 위한 가식적 행동이어도 좋다. 그나마 서민의 아픔을 철저히 무시하고 말로만 이해하는 사람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비록 위선이라도 행동으로 보이는 행위는 서민의 마음을 그나마 알고 있다는 의미지만 현장은 철저히 외면하고 결과만 쓸어 담으려는 후보는 염치없는 최악이다.

그 많던 보수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홍준표와 유승민을 제하면 모두 진보와 중도 진보를 외치는데 두 후보의 10% 남짓 지지율을 제외한 40%의 보수는 어디로 갔을까. 이들이 택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박근혜에게 던졌던 표심이 모여 자신들의 이권을 위한 아바타로 내세운 후보가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 애국자 김구를 죽이고 미국에 혼을 팔아 권력을 잡은 이승만을 국민이 몰아내지만 공은 박정희 군부가 가로챘고, 6월 대항쟁의 결과는 전두환 군부가 공을 가로챘다. 이번 촛불 혁명의 결과는 누가 가져갈지 궁금하다. 80% 이상의 국민 마음을 담아 들었던 촛불이다. 촛불의 대상이 되었던 무리가 뭉쳐 다시 공을 가로챈다면 우리는 영원한 역사의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좌익이라는 진보에선 북한의 존재가 오히려 불편하고 소위 보수에선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반갑다. 이상한 현상이다. 선거철을 앞두고 나타나는 전조현상은 이번에도 어김없다. 거대한 항공모함이 들어오고 미국의 북한 폭침설이 나돈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의미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지만 우리는 과거의 같은 길만 더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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