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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종자들이 만든 세상
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2017년 10월 30일 (월) 10:24:22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정치의 도가 무너지고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이 없고 단지 모시거나 따르던 사람의 뜻이 정의가 되어버리는 묘한 상황이다. 분명 우리 주위에서 많이 느꼈던 분위기지만 선뜻 분명한 형체는 보이지 않는 모호함이다.

우리 민족에겐 신성함을 상징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국가를 상징하는 태극기다. 그런데 요즘 이 세 가지가 이른바 정체성 없는 이상한 추종자들에 의해 최대의 수모를 당하고 있다. 어버이 연합과 엄마부대, 태극기 부대라 칭하는 시위자들에게 욕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맹목적 추종 대상은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린 국정농단의 큰 범죄인이지만 정작 이들의 의식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부모와 그 뒤를 잊는 애국자 딸이 있을 뿐이다. 이들에겐 역사 속 추종자들의 공통점인 사회적 정의에 앞서는 우상의 정의만 있다.

정치적인 추종은 종교의 맹목 추종과 많이 닮아있다. 이들에게 불필요한 것은 이성과 판단력이다. 이성은 믿음을 불안하게 하고 판단력은 추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모 시장이 뇌물혐의로 구속피소가 된 적이 있다. 객관적인 판단과 법리상으론 1심이나 2심에서 석방이 불가능하지만 추종자들은 공판일만 되면 틀림없는 석방을 믿었다. 버스를 동원해 모시러 가는 행태는 상고심에서 형이 확정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이제 특사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맹목추종이다. 여기에 이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간절한 종교방식의 믿음만 있다.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고 3일 만에 부활해 재림을 약속하고 떠난 예수의 약속은 이미 2천년을 넘겼지만 신도들은 아직도 굳게 믿는다. 이러한 신앙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단지 믿음에는 이성과 판단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거쳐 재림을 약속했던 신들은 예수 외에도 많다. 물론 예수보다는 훨씬 선배 신들이다. 이들 신들은 지역에 따라 부르는 호칭만 다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이태리에서는 바쿠스, 페르시아에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섬겼던 미트라,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라 부르던 신들이다. 이들은 죽음과 부활을 바탕으로 하는 구원의 믿음에서 기인한다는 점이 공통이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가담하는 신이 예수다.

우리의 정서와 전통, 국가 상징을 욕보이는 추종자도 있지만 학문을 계승하고 사상의 체계를 더욱 발전시켜 후세에 전하는 대단한 추종자들도 있다. 바로 공자의 제자와 후학들이다. 공자의 세대에서 함께했던 훌륭한 제자들도 있지만 특히 맹자와 순자는 추종의 대상인 공자를 단단한 성인의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공자의 손자이면서 제자인 자사의 학맥을 이은 맹자는 최대 경쟁학파였던 묵가와 도가를 넘어섰고 인심을 바로잡고, 사악한 학문과 행동을 금하고 음란함을 막는 것을 정치적 임무로 삼았다. 반면 순자는 자신만이 공자를 계승한 진정한 유가임을 강조했고 사람은 천지자연의 산물이라는 정의를 내린다. “성이란 하늘이 이뤄 놓은 것으로 배울 수도 섬길 수도 없다. 이 본능적 성이 정()으로 나타나고 욕()으로 표출된다.”는 주장이다. 크게 다른 두 사람의 추종이지만 누구도 스승인 공자를 욕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자를 탄탄한 유가의 시조로 자리매김해 준다. 맹목적 추종과는 차원이 다르다. 엄마와 어버이, 태극기로 상징하는 이성 잃은 추종자들이 거리에서 혹은 법정에서 사익으로 국익을 덮은 큰 죄인을 연호할 때, 돌아오는 것은 떨어지는 국격과 국치임을 알아야 한다. 무식과 무지가 죄는 아니지만 그것이 국익과 사회적 정의를 해치는 무기로 작용할 땐 죄가 된다. 특히 국정원과 결탁해 국가와 국민을 향해 칼날을 들이댔다면 반국가적 이적행위가 될 수도 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거나, 추종하는 우상을 해롭게 하는 행위는 무조건 악한 적으로 보는 사회적 정의를 상실한 사람들이 아직도 거리에 넘쳐나고 있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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