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시리아 난민의 아이콘 크르디

중동에 불어 닥쳤던 민주화시위의 영향으로 촉발된 시리아 사태도 애초에는 소규모의 평화시위로 시작이 되었다.

1971년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에 이어 그의 권력을 세습한 바사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장기집권과 권력세습이라는 비난에 직면하면서 정권이 위태롭게 되자 정치범을 수용하고 경제를 통제하였으며 정치집회 및 출판의 자유 등도 제한하였다.

이에 따라 시리아인들은 정치범 석방과 자유경제, 부정부패추방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서구 열강들이 개입을 하면서 결국 내전으로 번지고 말았다.

수년간의 내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상자와 수십만 명의 난민들이 발생하였지만 주변국가의 외면으로 이들은 오갈데 없는 국제적인 미아가 되어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중 201492일 터키해변에서 차가운 모래 속에 얼굴을 파묻은 체 죽어있는 어린 남자아이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SNS를 통해 타전된 이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를 충격과 경악에 빠뜨렸다.

사진의 주인공은 고작 3살밖에 되지 않았던 어린 아이였다.

전쟁이 무엇인지, 난민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죽어야 했던 어린아이의 주검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이 후 EU를 중심으로 시리아 난민대책이 세워지기에 이른다.

내전으로 조국을 탈출한 수많은 사람들이 국제적 외면으로 기아와 질병 속에서 죽어갔지만 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참혹한 어린 주검이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을 사지에서 구해냈던 것이다.

케빈카터 기자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

미국의 저명한 언론상인 퓰리처상에 빛나는 케빈카터 기자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사진이 있다.

가죽과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고개를 들 힘조차 없이 땅에 머리를 쳐 박고 있는 어린 소녀 뒤쪽으로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 한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섬뜩한 사진이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수단의 어린 소녀를 촬영한 이 한 장의 사진은 결국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이 후 아프리카의 기아를 퇴치하자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진을 찍었던 케빈카터 기자는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카터는 이 사진 한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사진 촬영보다 그 소녀를 먼저 구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서방 언론의 비난이 쏟아져 극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의 이 사진 한 장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아프리카 인들을 구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구휼보다는 돈벌이를 먼저 생각했다는 비난이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그는 자살하기 전에 몇 마디를 남겼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은 후 소리를 쳐서 독수리를 쫓아버렸다. 소녀는 잠시 후 몸을 일으켜 앙상한 팔다리를 떨며 마을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나는 충격이 스쳐간 뒤 한동안 나무그늘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다.

눈앞에서 시름시름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이 거기에 있었다.“

로이터 통신의 ‘1987 이한열

198769일 아침, 로이터 통신 한국 특파원이었던 정태원기자는 연세대학교에서 찍은 한 장의 시위현장 사진을 통신사에 긴급 타전했다.

대학생들이 호헌철폐독재타도를 외치며 교내에서 시위를 하던 중 최류탄 파편을 머리에 맞고 쓰러지는 학우를 뒤에서 끌어안고 부축하는 사진이었다.

고개를 떨어뜨린 채 얼굴에 한 줄기의 피를 흘리고 있는 학생은 당시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이었다.

‘1987 이한열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사진이 <중앙일보>에 실리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함께 국민적 분노를 사게 함으로써 6,10 민주항쟁을 성공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0명의 죽음은 통계일 뿐이다.”

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한 유명한 말이다.

사진기가 발명된 이 후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역사가 바뀌거나 전 인류의 공분과 감동을 끌어내는 상황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천 마디의 말이나 수백 권의 책보다도 미사여구 없이 진실만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이 우리들에게 어필하는 힘이 큰 까닭이겠다.

스탈린의 말처럼 통계로만 잡힐 뿐인 천명보다는 한사람의 처참한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겨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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