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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한번쯤 떠나보자
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2018년 11월 05일 (월) 10:45:36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세상이 온통 연막이다. 아버지는 전처를 죽이고 딸은 아버지의 사형을 간구한다. 일제의 강제징용 배상은 국제심판으로 갈 모양새고 우리의 대표 신문은 이를 은근히 반민족의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신문이다. 여기에 5.18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성폭행이 여러 건이 불거져 나오고 10대 여성 신도 10여 명을 성폭행한 목사가 나타났다. 유치원 비리는 비정상적으로 풀리고 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금융권은 얼어붙고 있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불거지는 사건 사고들이지만 빈도가 너무 잦아지고 있다. 국민들의 정서도 그만큼 메마르고 있는 느낌이다. 뉴스가 즐겁지 않으니 생활 역시 우울하다. 특히 여배우와 유명 정치인의 흙탕물 치고받기는 이러한 사회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여기에 유명 소설가와 시인까지 더불어 날뛰니 좋아했던 독자들은 당황스럽다. 왜 정치인들의 암투에 스스로 불나방이 되어 뛰어드는 것일까. 아무리 살펴봐도 정치인들의 스모킹 건에 맞은 건 당사자들이 아니라 배우와 소설가 그리고 시인들이다. 이른바 유명세를 노리다 몰고 온 자멸이다. 이들은 이제 삼류소설가와 삼류시인 그리고 삼류배우가 되었다. 여기에 편승했던 정치인과 법조인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인물은 이해가 힘든 행보로 감옥으로 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모두 자초한 결과다.

이러한 혼돈의 가을에 우리는 무엇으로 마음을 다스릴까. 일단 내려놓자. 하지만 어려운 것이 바로 내려놓음이다. 유명 스님과 작가들이 끊임없이 책으로 쓰고 주장하는 것이기에 잘 알고 있지만 실천은 어려운 명제다. 단지 책을 읽을 때만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는 무욕과 무소유지만 행동은 생각을 항시 배신한다. 뇌는 생각하지만 생각은 행동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려놓음 이전에 일단 떠나보자. 여행은 가벼워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 여행은 무겁다. 무거우면 즐겁지 못하다. 그래서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내려놓음을 동반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여행이라면 무조건 외국 유명지를 떠올리지만 국내 여행의 가벼움은 부담이 없어서 더욱 좋다. 대한민국은 외국 여행의 열병에 시달리고 있다. 내국 여행이 40%에 불과하고 60%가 외국 여행을 즐긴다. 하지만 올 가을은 단풍과 함께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나보자. 복잡한 사회의 혼돈에서 벗어나 붉은 빛, 노랑 빛이 뚝뚝 떨어지는 계곡 길을 걸으며 몸과 마음을 정화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 조선 사람을 정의해 놓은 말이 있다. ‘조선 사람은 두 부류가 있는데 한 부류는 죽을 때까지 일만하다 죽는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죽을 때까지 돈만 벌다가 죽는 사람이라는 왠지 슬픈 우스개 농담이다. 어쩌면 단 한 번 주어진 삶에 여유는 고사하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전혀 할당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일손을 놓지 않던 사람의 정의는 성실한 사람이고, 개인주의 속에서 자신의 삶을 철저히 즐기다 간 사람은 한량이라는 그다지 좋지 않은 칭호를 감수해야 한다. 무슨 삶을 택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자신만을 위한 시간마저 포기한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길이 없다. 그냥 태어나 일만하다 죽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다.

노자 할아버지가 아무리 개인주의와 무위, 무욕을 부르짖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깨우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특히 노자의 도덕경은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한다. 학교에서 배웠던 도덕은 엄밀히 노자와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공자와 관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예의를 배웠다. 노자는 비움을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이라 가르쳤다. 학문이란 날마다 쌓아가는 것이고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도는 날마다 쌓아올린 학문까지도 종국에는 비워야 한다. 물론 현대와 괴리가 있는 가르침이지만 비워야 한다는 기본 분모는 변하지 않는다. 욕심을 비우면 만족하고 만족은 행복을 채워준다. 내 손에 쥔 것을 내려놓지 못하면 옆 사람의 손을 잡아주지 못하고 사랑을 잃는다. 복잡한 번뇌의 현실을 떠나 모두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자. 붉은 단풍물이 눈에서 뚝뚝 떨어지고 가슴이 시리도록 청량한 가을의 계곡을 찾아 마음속의 화를 비워보자. 명상은 벽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가을 길에서 하는 것이다. 그냥 떠나 보자. 저절로 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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