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숙/ 시인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들에게 때때로 애정표현을 한다. 잠자기 전 볼에 입맞춤을 하곤 하는데 그 반응이 재밌다. 조금은 난감해 하면서 입 맞췄던 볼을 손으로 닦아 낸다. 그럴 때 마주하는 얼굴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한다.‘이젠 이럴 때가 아닌 듯한데...’라고 말이다. 내 입가엔 묘한 웃음이 나온다. 아직은 어리다고 생각하는 아들은 뭐가 아니란 걸까? 라고 말이다. 저는 이제 엄마가 생각하는 정도의 어린애가 아니라는 표현인 것 같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알게 된 어렴풋한 상식 때문일까? 아니면 소심한 본인 성격 때문일까? 알 수는 없지만 그냥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순간 고민에 빠진다.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 방식으로 지속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들의 부끄러움을 존중해 줘야 하는 건지 말이다.

요즘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 새삼스럽고 낯설지만 부끄럽다는 표현은 여러 경우에 쓰여 진다. 그러나 사전적의미로 적어보면 스스로 부족함을 절감하여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 표현 했다. 부끄러움은 오래전부터 인문학적으로도 중요한 주제였다.

서양 철학의 기초를 세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b.c428-348)고르기아스를 통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인간의 덕목인가를 보여 준다. 고르기아스는 당시 실존 인물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제목인데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람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면 무엇이든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살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삶을 사는가 하는 물음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수단과 방법이다. 소크라테스가 인류의 스승이라 불리는 이유는 삶과 앎이 일치하지 않는 삶을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당한 사형선고가 내려지자 제자들은 외국으로 도망칠 것을 간곡하게 권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언제나 가장 선한 것으로 보이는 원칙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따르지 않는 사람이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행여 누구라는 것이 탄로 날까 두려워서 얼굴을 꽁꽁 가리고 한밤중에 외국으로 가려다 붙잡힌 사람이 문득 생각난다. 그 사람이 한때 최고의 공직자였다는 것에 이렇게 부끄럽고 참담할 수가 없다. 매일 들려오는 소식들이 하나같이 기가 막힌다. 보통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법 없이도 서로 지켜야 하는 정도와 기본이 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어떤 사람들은 애써 지키고자하는 사회적 불문율과 윤리가 희미해지고 법이라는 최후의 보루마저 비웃음의 대상이 된 듯하다. 보통사람으로 애써 지켜나가며 사는 삶의 의미가 송두리째 흔들린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을 바라보는 민망함과 치욕감이다. 부끄러움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고민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에게만 있는 감정이다. 부끄러움은 반성적인 감정으로 자신을 뒤돌아보는 과정과 결과에서만 생긴다. 외부에 비판이 있든 없든 스스로 자신을 돌아봐야하고 같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표현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불타는 의지를 보였던 독립투사들과 달리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존재의 한계를 이야기 했던 윤동주시인이 생각난다. 그가 지금껏 우리 마음속에 기억되는 건서시속에서 표현했던 부끄러움이다. 하늘은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원했다.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의도하지 않아도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린다. 나라는 사람의 부족함을 증명해주는 수천수만 수억의 비교 대상들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런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은 내가 느끼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고 그 노력 끝에 작은 차이일지라도 성장을 하게 된다. 그런 깊은 성찰이아니더라도 이제 엄마가 손을 잡아주는 것이 다른 친구들에게 어린아이처럼 보일까봐 걱정이 되어 쉽사리 손을 내어주지 않는 부끄러움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고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으로 보인다.

피해를 당한사람이 죄인이 되는 몰염치가 사회곳곳에서 판치는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이 슬프다는 여검사의 말이 생각난다.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거나 인정사정없이 타인을 짓밟는 행위는 남보다 긴 소유목록에 집착하여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인간은 부끄러움을 포기하는 순간 자기안의 과시와 허세 돈과 권력을 향해 질주하는 브레이크 없는 전차가 된다. 특히 권력을 향해 치닫는 이들의 광기를 보면서 부끄러운 건 우리의 몫이 되었다.

한 주일에 꽃피움을 위해 일 년을 준비하고 아름답게 피고 사라지는 벚꽃을 보는 요즘,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삶인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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