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 광신대학교 복지상담융합학부 교수, 사회복지학박사

소비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필요를 충족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활동이다. 그리고 소비행위는 원래 경제적 현상이다. 따라서 소비의 대상이 되는 사물(상품)은 품질·성능·기능 등의 유용성으로 이루어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지닌다. 오늘날 인간의 문화양상과 삶이 다양해짐으로써, 소비는 단순한 경제적 현상으로 간주될 수 없으며, 사물(상품)의 가치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보다는 사물(상품)에 부여된 기호학적 가치를 지닌다.

'소비의 사회'를 집필했던 보드리야르는 사물과 소비의 관계를 통하여 소비에 대한 독창적인 정의를 내린다. "소비는 물질적 사용도 풍부함의 현상학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소화하는 음식물에 의해서도, 사람들이 입는 옷에 의해서도, 사람들이 이용하는 자동차에 의해서도 정의되지 않고 의미심장한 실체를 지닌 그 모든 것의 조직에 의해 정의된다. 이제 그것은 다소 일관성 있는 담론 속에서 구성된 모든 사물과 메시지의 잠재적 총체성이다. 소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한, 그것은 기호를 체계적으로 조작하는 활동이다."

이제 소비의 사물이 되기 위해서는 사물은 기호가 되어야 한다. 사물을 물질적 실체가 아닌 기호로 파악했다. 그리고 이 사물의 기호가 체계를 지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 기호체계 안에서 소비의 개념을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소비사회에서 중요한 범주는 사물의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보다는 기호학적 가치, 특히 광고 언어가 사물에 부가하는 기호학적 가치이다. 그러므로 생산이 소비의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대중매체는 광고언어를 통해 기호학적 가치의 창출에 나선다. 결국 사람들은 광고상품 그 자체보다는 기호학적 가치를 위해 소비한다.

가령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마실 때 소비하는 것은 단순한 탄산음료가 아니라 '젊음' 이라는 기호학적 가치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세탁기를 사용할 때 소비하는 것은 빨래를 하는 기계가 아니라 '행복''위세'라는 기호학적 가치이다. 이러한 기호학적 가치는 소비의 맥락에서 사회현실 전체에 침투한다. 게다가 기호체계는 현실 자체를 구성하고 창출한다.

보드리야르의 관점에서 보면, 기호학적 가치와 기호체계가 현실의 지배적인 구성요소가 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온전히 기호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기호와 함께 있고 기호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

거리의 수많은 광고에 새겨진 기호, 사회적 신분과 위세 또는 차별적 개성을 나타내는 상품에 담겨진 기호, 사람들의 욕망을 유혹하는 패션과 화장에 배여있는 기호, 문화적 공간이나 실내 분위기가 바깥으로 표출하는 기호, 이러한 것들이 사회현실 전체에 파고들어 현실 자체를 움직인다. 그러므로 사회현실의 논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호로서의 사물을 따라 움직이게 하는데, 이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기호를 소비할 수밖에 없게 되며, 소비는 당연히 기호의 소비를 포함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이것이 바로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소비사회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그러면 소비사회에서 개인으로서의 존재는 기호에 맞설 수 없는가? 개인으로서의 존재는 기호의 조작과 계산속에서 사라진다. 소비의 인간은 자신의 욕구와 자신의 노동의 생산물을 직시하는 일도 없으며, 자신의 이미지와 마주 대하는 일도 없다. 그는 자신이 늘어놓는 기호의 내부에 존재한다. 소비사회에서 소비의 진정한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기호의 질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기호의 질서에 둘러싸여 존재한다.

가령 쇼윈도를 바라보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그는 거기서 기호로서의 사물을 바라볼 뿐이며, 바라보는 것에 의해 그는 사회적 지위나 차별적 개성을 의미하는 기호의 질서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따라서 쇼윈도는 소비 그 자체가 그리는 궤적을 반영하는 장소이며,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흡수해 버린다.

결국 소비사회에서 사물의 존재나 개인의 존재는 기호의 질서 안에서 흡수되고 소멸된다. 존재하는 것은 사물이나 개인이 아니라 기호이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기호체계인 코드(code)이다. 코드는 현대의 소비사회가 낳은 신화가 되고 있다.

사실 오늘날 차이화된 기호로서의 사물의 유통구입판매는 우리의 언어활동이며 코드인데, 그것에 의해서 사회전체가 의사소통하고 서로에 대해 말한다. 따라서 코드는 의사소통 체계에 특유한 언어 또는 기호체계이다. 코드는 모든 언어가 개인에게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듯이, 개인에게 기호체계로서 말한다. 마치 언어가 의사소통을 규제하는 코드를 내포하듯이, 사회도 우리의 일상생활을 조직하고 구조화하는 코드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코드가 오늘날 소비사회 전체를 구성한다. 코드의 원리가 소비사회 조직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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