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가정사(1)-키르케고르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1813-1855)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 안네는 원래 그 집의 하녀였다. 아버지는 전처(前妻)가 슬하에 자식 하나 없이 세상을 떠나자 안네를 강간하여 임신케 하였고, 이듬해에는 당시 교회의 교리에 금지되어있는 재혼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결혼식 후 다섯 달 만에 안네는 장남을 낳고 말았다. 원래 양심적이고 종교적이었던 그 아버지는 이 사실을 두고 평생 괴로워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키르케고르는 막내로 태어났는데, 마침 그가 출생한 연도는 덴마크에 새로운 돈(지폐)이 발행되었던 해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순간 재산을 잃는가 하면, 몇몇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도 하는 혼란의 해였다. 키르케고르는 자기 자신의 신세를 마치 그 해에 발행된 지폐와도 같이 생각하였다. , 자기 스스로를 질서의 존재라기보다도 혼돈의 존재로 인식했던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린 채,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극장, 다방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국가 신학고시도 포기하였다. 형과의 사이도 좋지 못한 데다, 불과 3년 사이에 어머니(1834 731, 66세의 나이)와 세 형들이 모두 죽고 마는 슬픔을 겪었다.

스물두 살 되던 해의 가을, 키르케고르는 아버지가 하나님께 지은 두 가지 죄를 알게 된다. 그의 부친(미카엘)은 불우한 소년 시절에 양을 치다가 심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신을 저주하였다. 또 하나의 죄는 앞에서 말했듯이, 하녀와 정식결혼도 하지 않은 채 임신을 시켰다는 사실이다. 미카엘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자녀들이 예수가 이 세상에서 살다간 나이인 33세를 넘기지 못하리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두 아내와 다섯 자녀를 잃게 된 것은 모두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였다.

키르케고르 역시 자신이나 지금 살아있는 형 모두 머지않아 죽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하여 서른네 살의 생일을 무사히 넘겼을 때, 혹시 생일이 잘못 기록된 것이 아닌가 하여 (호적이 있는) 교회에 조사해보러 갈 정도였다. 두 형제가 모두 살아 33세를 넘겼을 때, 그의 믿음은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그의 형 페테르는 신학자로 정부에서도 활동했으며, 루터교 주교까지 지냈다. 키르케고르의 아버지는 무려 82세까지 살았다. 하지만 그의 장수는 차라리 저주에 가까웠다. 긴 생애 동안 두 명의 부인이 죽고, 8남매 중 6명이 죽는 것을 차례로 바라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23세 되던 해(1836), 심지어 자살을 시도한다. 미수로 끝나긴 했지만. 이 사건 이후 그는 점차 안정을 되찾는다. 그런데 스물다섯 살에 맞이한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치 신의 계시인 것처럼 느껴졌다. 키르케고르는 상당히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으나 불려 나가기는커녕 제대로 보존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키르케고르는 1841 1020,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하지만 18551020, 잡지순간10호를 준비하다가 길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척추병이었다고 한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한 달 후에 세상 사람들의 오해와 비웃음 속에서 고독한 단독자로서의 짧은 생애를 마쳐야 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마흔두 살이었다. 그는 병원에 있는 동안 누이와 매부, 그리고 조카들이 병실에 들어오는 것은 환영했다. 하지만 불화로 발을 끊고 살았던 목사 형은 끝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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