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가정사(2)-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프로이트는 185656, 오스트리아 모라비아의 프라이베르크(현재는 체코의 프르시보르)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40)와 젊은 어머니(20) 사이에는 20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초혼(初婚)의 아내를 여의고 재혼하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 7명의 자녀가 태어났고, 그 가운데 맏이가 바로 프로이트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전처(前妻)가 낳은 아들 임마누엘에게는 이미 한 살 된 아들 요한네스와 그 누이동생이 있었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조카 요한네스는 프로이트의 친한 친구이면서 심한 싸움의 상대였다. 여자 조카인 파울리이네는 짓궂은 장난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어린 프로이트에게는 커다란 성적(性的) 관심의 대상이었다.

또 프로이트에게는 배가 같은 누이동생 다섯 명과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바로 아래의 남동생 율리우스는 그가 만 한 살이 되기 전에 태어났다. 그는 한 편지에서바로 아래 동생과 나는 어머니의 사랑과 젖을 놓고 서로 다투었다. 그가 태어난 지 여덟 달 만에 병으로 죽었을 때는 기쁨을 느꼈다.라고 쓰고 있다. 같은 편지에서 그는아버지가 그의 아내(프로이트의 어머니)에 대해서 자기보다 나(프로이트)에게 더 정신이 팔려있다고 비난하며 다툰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특이한 부자(父子) 관계는 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상기시킨다. 이것은 어린 사내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이성인 어머니에게 독점욕과 성적 애착을 갖는 반면, 동성(同性)인 아버지에게는 질투와 반감의 감정을 갖게 된다는 학설이다.

프로이트는 40대 무렵 수많은 심리적 불안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 이때 그는 자신의 꿈, 기억 그리고 자신의 인격 발달의 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분석하는 동안 죽은 아버지 야콥 프로이트에 대해 적대감을 느꼈으며, 또 어린 시절 매력적이고 따뜻하며 포근했던 어머니 아말리아 프로이트에게는 성적(性的)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 끌어모은 자료들을 묶어 1899 11, 독일의 라이프치히와 비엔나(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인)에서 동시에꿈의 해석이라는 저서를 출판하였고, 이 책은 오늘날 20세기 최고의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로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처음 소개하였는데, 당시인 19세기 말은 파리와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소포클레스의 비극작품 오이디푸스 왕이 상연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던 때였다. 한때 프로이트의 동료였던 심리학자 칼 융은 이를 뒤집어 여성이 아버지에게 갖는 성적(性的)인 호의와 어머니에 대한 경쟁의식엘렉트라 콤플렉스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프로이트는 이 신화를 아들이 아버지를 적대시하고 어머니를 좋아하는 본능의 표현으로 보았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두 살이 좀 지났을 무렵, 어머니의 나체를 보고 강하게 마음이 끌렸다고 적고 있다. 어쨌든 어린 시절의 이러한 경험이 그의 학설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고향 프라이베르크는 당시 인구가 5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읍이었다. 주민은 주로 천주교도였고, 유태교도는 겨우 2 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이 사실은 그의 조상들이 유대인으로서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았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또 그가 비인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 유대인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이러한 분노가 바로 그의 정신분석학을 창시케 한 원동력이 아닌가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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