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탄생설화-석가모니(2)

석가모니의 부친인 정반 왕은 예순네 명의 지혜로운 승려들을 불러 왕비의 태몽 이야기(네 명의 왕에게 유괴되어 황금의 궁전에 끌려갔는데, 하얀 코끼리가 주변을 세 번 돌고 나서는 오른쪽 무릎에 앉음)를 털어놓았는데, 그 해몽(解夢)은 이것이었다. “왕비가 사내아이를 낳을 것이며, 이 아이가 집에만 머물러 있으면 왕이나 세계의 지배자가 되겠지만, 그가 아버지 곁을 떠난다면 대각자(大覺者-크게 깨달은 자)가 될 것이외다.”

드디어 출산을 위해 마야 부인이 친정으로 돌아가던 중, 룸비니(네팔 남동부 평원에 위치)라는 동산에 이르렀다. 잠시 휴식하는 동안 무우수(장미목 콩과의 상록교목)에 오른팔을 뻗어 나뭇가지를 잡는 순간, 석가가 오른쪽 겨드랑이 밑을 뚫고 탄생하였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육방, 혹은 팔방으로 일곱 걸음을 떼고 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외쳤다. 하지만 마야 부인은 석가를 낳은 지 7일 만에 숨을 거두고 만다.

여기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란 말은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라고 풀이된다. 그러나『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에는 이 말의 다음에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三界皆苦 我當安之’-삼계계고 아당안지)”가 추가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삼계(三界)란 천상·인간·지옥계를 가리키며, 석가모니가 일곱 걸음을 걸어갔다는 것은 지옥도·아귀도·축생도·수라도·인간도·천상도 등 육도의 윤회(六道輪廻-중생이 죽으면, 여섯 곳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이 여섯 단계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은 천상도(天上道)로서, 마치 극락같이 번뇌가 적고 평온한 세계이다. 이곳에 태어나는 사람은 육욕(肉慾), 물욕(物慾)은 없으나 명예욕이나 지식욕은 갖고 있다. 모든 집착을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들어선 것은 아니므로, 수명이 다하면 다시 윤회하게 된다. 여섯 가지 세계는 사람이 고통받는 원인이자 해탈을 방해하는 삼독(三毒)으로서의 탐욕(貪-탐), 성냄(瞋-진), 어리석음(痴-치) 및 총체적인 고통과 즐거움을 상징화한 것이기도 하다. 즉, 탐욕을 버리지 못한 자는 아귀(餓鬼-평생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곳. 먹을 것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데서 ‘아귀다툼’이라는 말이 생겼음)처럼 살아가게 마련이고, 자애심 없이 분노를 안고 살았던 사람은 수라도(修羅道-생전에 몹시 공격적이거나 교만하고 시기심이 강해 늘 싸움을 일삼는 사람들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곳. 싸움이 그칠 사이가 없어 무법천지인 곳. 여기에서 ‘아수라장’이란 말이 생겼음)로 떨어지며, 참된 지혜를 지니지 못한 자는 축생도(畜生道-허위사실로 여론을 선동하거나 법을 악용하여 국정농단 같은 죄를 짓는 자들이 동물로 다시 태어나는 곳)에 떨어져 짐승처럼 우둔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지옥(끔찍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죽지 못한 채, 몇 번이고 똑같은 고통을 당하는 곳)은 저 모든 고통을 겪는 말 그대로 ‘고통 종합세트’이고, 천상도는 해탈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생전에 선하게 살아가면 올라가 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참고로, 현세의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도는 나머지 5곳의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또한 ‘유아독존’에서의 ‘나’는 석가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개개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존귀한 실존성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석가가 이 땅에 온 뜻은 바로 이를 깨우쳐 고통 속에 헤매는 중생을 구제하고, 인간 본래의 성품인 ‘참된 나(眞我)’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후대의 불교인들이 창작해 낸 설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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