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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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쟁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명가도(征明假道.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명을 치고자 하니 길을 내어달라고 요구했던 것)를 내세워 조선을 침략하고 짓밟은 원수였지만 많은 일본인들은 아직도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출신 성분이 낮은 데다 특이한 외모로 인해 원숭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가 오다 노부나가, 도꾸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일본 전국시대 3대 영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계기는 때마침 일어난 모반사건 때문이었다.

먹고 먹히는 혼란스런 전국을 차례로 재패하면서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두었던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의 군대를 야전에 보내고 혼노지라는 사찰에 잠시 머물고 있는 틈을 타서 그의 심복이었던 이케치 미츠히데가 모반을 일으켰던 것이다.

오다는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불가항력임을 알고 자결을 하였지만 원정을 갔던 도요토미가 주군의 복수를 위해 군사를 끌고 와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성공을 하면서 오다의 패권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된다.

당시 일본 내 최고의 다이로(영주)였던 도꾸가와 이에야스마저 반 협박으로 무릎을 꿇린 그는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던 것이다.

도요토미는 전국 통일 후 오사카에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다는 웅대한 성을 지어 자신의 권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각종 개혁안과 법령을 공표한다.

그는 제일 먼저 전국에 정전(停戰)명령을 내리고 모든 농민들에게서 무기인 칼을 전부 회수하는 가따나가리법을 시행하여 혹시 있을지도 모를 모반의 싹을 미리 자르고자 했다.

또 히토바라이령을 내려 농민은 농사만 짓고 상인은 장사만 하도록 했는데 권력기반을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 사농공상의 계급체계도 확고하게 정립해 놓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출신성분은 망각한 체 농민은 농사만 지어야지 칼을 가진 부시 흉내를 내서는 않된다는 오만하고 자기 우월적인 생각에 젖어있었다.

일본을 완전히 평정한 후에는 엉뚱한 꿈까지 꾸게 된다.

조선을 빼앗고 중국까지 점령한 후 베이징을 일본의 수도로 삼아 조선을 포함한 주변 10개국을 덴노(천왕)의 직할령으로 하며 자신은 중국으로 건너가 인도 정벌에 착수하겠다는 망상을 갖게 되지만 이순신에게 참패를 당하면서 병을 얻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천하를 호령하던 도요토미에게는 56세 늦은 나이에 얻은 히데요리라는 다섯 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었다.

죽음을 직감한 그는 병석에서 당시 권력의 중심에 있던 다이로들을 불러 눈물로 호소를 했다.

히데요리를 보호해달라는 호소만으로는 믿음이 가지 않았던지 아들을 보호해 주겠다는 각서에 서명까지 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도요토미가 죽고 나자 일본 권부는 문신파와 무신파로 나뉘어 다투다가 두 진영이 역사상 가장 큰 전투 중 하나였던 세키가하라 전투를 벌이게 된다.

결국 전쟁에 승리한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의 실권자로 부상하면서 아들을 지키려는 도요토미의 노력는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개인 절을 지으면서 범종에 새긴 몇 글자를 꼬투리 잡아 오사카 성에 쳐들어간 도꾸가와군에 의해 성이 함락되고 아들 히데요리는 가족들과 함께 자결을 함으로써 도요토미와 대신들의 각서는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말았다.

도꾸가와는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도요토미가()의 마지막 싹을 잘라내 버림으로써 명실공히 일본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아들과 가문을 지키고자 했던 도요토미의 노력은 그가 죽고나자 허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

사람의 목숨은 유한하고 세상에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다는 권력의 단맛에 취해 훗날을 생각하지 못하고 현재의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여기는 권력자들에게 역사는 따끔한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원대한 야망을 가졌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현재 자신이 쥐고 있는 막강한 권력을 믿고 아들의 뒷일을 보장해 놓았다고 안심을 했지만 착각이었다.

충성을 맹세했던 부하들마저 그가 죽고나자 배신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언제 변을 당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의리를 지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권력의 속성이란 다 그런 게 아닐까.

우리나라의 근현대 정치사를 들춰봐도 알 수가 있는 대목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후를 염려하여 안전판을 만들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결국에는 그 안전판이 오히려 자신을 옥죄는 흉기로 변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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