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호/ 행정학박사,국회출입기자포럼 회장

새해 새날 새 아침, 동해 바다 검푸른 수평선에서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이 솟구쳐 올랐다. 저토록 이글거리는 불덩어리 태양이 솟구처오르기까지 어둡고 추운 긴 밤을 견디고 이겨내야만 했다. 동 터 오는 새벽을 지나서 어둠에 덮힌 온 세상을 환히 밝히기까지 태양은 정해진 순리에 따라서 자기 길을 열심히 달려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기 길에서 자기 일을 쉬지 않고 열심히 해야만이 마침내 빛을 발할 수 있는 법이다.

2021년 올해는 신축년(辛丑年), (, )의 해이다. 소는 생긴 모습부터 쥐나 고양이처럼 작지 않고 사람 보다도 더 크다. 움직이는 동작도 경박하지 않고 점잔하고 우직(愚直)하다. 살아서는 평생을 쟁기질로 단단한 논과 밭을 갈아 엎어서 벼와 보리, 콩 등 농작물을 심고 기르게 하고, 무거운 짐을 땀을 펄펄 흘리면서 구르마로 옮겨 준다. 언제나 불평이나 말 한 마디 없이 주인이 하자는대로 해준다.

죽어서는 살과 가죽, 뼈까지 모두 자기를 부려 먹은 사람들을 위하여 내준다. 그러나 소도 다른 동물들과 같이 말이 없을 뿐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잘 알고 있다. 소가 나이가 들어서 힘이 없어 농사일에 힘들어 하거나, 자식들의 교육비 등에 쓰기 위하여 장날에 내다 팔려고 하면, 어느 틈에 느낌으로 알고 하루 전에는 밥(여물)을 먹지 않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장터로 끌려가는 날에는 자기가 살던 집을 몇 번씩 뒤돌아보고 슬픔을 나타내지도 못하고 마지 못해 주인을 천천히 따라간다. 그래서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에는 소똥령()’이라는 이름의 고개가 있다고 한다. 장터로 팔려가던 소들이 고개 정상의 주막 앞에 똥을 많이 누어 산의 모양이 소똥처럼 생겼다는 유래가 전해져 온다고 한다 (조선일보 2020. 12. 28). 동물들은 밀림에서 자기 영역을 표시하거나, 다시 돌아올 수 있기 위하여 소변이나 대변으로 흔적을 남긴다. 팔려가는 소는 마지막 몸부림이고 마지막 흔적을 남기고 싶었는지 모른다.

경남 거창군 가북면에는 소가 맹수로부터 어린아이를 구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소의 헌신과 의리를 기리는 우혜(牛惠)’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조사에 의하면, 과거 농경사회에서 부()와 재산을 상징하는 소의 중요성을 반영하여 소와 관련된 지명은 731개로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용(1261), (744)에 이어서 세 번 째로 많다. 소 관련 지명 중에는 마을 이름(566, 77.4%)이 많다. 전남 나주시에는 아흡 마리 소를 기르면서 마을이 번창했다고 해서 구축(九丑)’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지난해 811일 경남 남해군 고현면 갈화리에 있는 무인도인 난초섬에서 암소 한 마리가 발견되었다. 소의 귀에 달린 귀표를 보니, 전남 구례군 구례읍 한 축산 단지에서 87일 내린 집중 폭우로 3일 간 67km를 떠내려가면서 표류하면서 헤엄쳐 난초섬에 도착했다 (조선일보. 2020. 8. 13).

이 암소는 새끼를 밴 상태로 알려졌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뱃속의 새끼를 살리려고 3일 간 굶으며 흙탕물을 뒤집어 쓰면서 급류에 휩쓸려 낭떨어지로 떨어지기도 하고, 급류에 잠겨 흙탕물을 먹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물 속 모난 돌과 날카로운 많은 부유물(浮游物)에 부딪히고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얼마나 눈물겨운 사투(死鬪)를 벌였을까. 말 못하는 소의 눈물겨운 모성애(母性愛)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88일 남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와 섬진강댐 방류로 인해 구례를 비롯한 남원, 곡성, 하동 등 섬진강 유역이 물바다가 되었다. 구례군 섬진강 수해극복 구례군민 대책본부는 810일 폭우로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 죽은 700여 마리 소와 돼지, , 오리 등 축사에 있던 수천 마리 동물들의 위령제를 지냈다.

10여 마리는 축사를 탈출하여 3km 산길을 걸어서 전남 구례군 오산(해발 531m) 사성암으로 올라오면서 목숨을 지켰다. 주지 대진스님은 사성암으로 올라온 소들과 눈을 마주쳤는데 그 눈이 너무 슬펐다. 그 슬픈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기르던 소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심정이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불교에서는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 극락왕생을 바라면서 49()를 지내는데, 사성암은 제일 많은 동물들이 생명을 잃은 89일로부터 49일째인 926일 위령제를 지냈다.

2000년부터 사회상에 대하여 교수신문이 전국 교수들의 의견을 물어서 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아시타비(我是他非)’(응답자 906명의 32.4%)라는 신조어(新造語)이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인데, 요즘 유행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의미이다. 2위는 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후안무치(厚顔無恥)(21.8%)라고 한다. 특히 자리가 바뀌면 타인과 자신에게 적용하는 도덕적 잣대가 달라지는 일부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이 국민들의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청소년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소설가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의 수필 우덕송(牛德頌)’이 생각난다. 소의 덕()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힘든 농사일을 모두 끝내고 한 겨울, 주인 농부가 쑤어준 여물을 먹고 앉아서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모습은 혼란스러운 세상을 걱정하고 근심하는 군자(君子)의 모습 같다고 춘원은 써 놓았다. 나는 소띠로서 소를 키우고 농사일에 부리는 농부의 아들로 자라나면서 소를 보고 많은 배움을 얻었다. 이 나이에도 소를 생각하며 반성하며 배우고 있다.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잡으면 맛이 간 사람들처럼 초심을 잃고 민심과 동떨어진 소리를 하는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일부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서민들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은 쓴맛을 맛본다. 돈이 초고의 가치가 되어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모두 돈의 노예가 된듯한 각박한 세상이다. 소의 해, 올해는 돈도 좋지만 근면과 정직, 남을 배려하는 상생과 희생을 소에게 배우자고 하면, 너무나 사치스러운 말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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