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선한 영향력-증자

미국의 전 대통령 오바마는 나는 아버지 없이 자랐기 때문에 항상 그 빈자리를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재즈 콘서트장에 데려가 주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농구공을 사주었던 아버지였음에도, 아버지의 부재(不在)가 몰아온 공허함 때문에 자녀들과 더 함께 있고자노력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한 사람의 인격 형성에 부모만큼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없을 것이다.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동양 철학자들이 엄격한 부모의 가르침을 받았다면, 서양 철학자들은 비교적 자유분방한 편이었다.

증자(曾子, 중국 전국시대의 유가 사상가. 이름은 삼)는 아버지 증석(曾皙)을 따라 공자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가 어렸을 때, 참외밭을 매고 있는 아버지 곁을 지나다가 참외 줄기를 상하게 만들었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 증석이 작대기로 때려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온 집안 식구들이 물을 끼얹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증석은 자기 아들이 죽는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더 부끄러워하였다.

선생님이 아시면,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자기 자식을 죽였다고 얼마나 슬퍼하실까?”

과연 증석은 어떤 사람인가? 증자(=증삼)의 아버지인 그는 공자의 72 수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어느 해 봄날, 공자가 몇몇 제자들과 둘러앉아 각자의 포부를 말하게 하였다. 군사에 밝은 자로(子路)군사를 정비하여 이웃 나라가 얕잡아 볼 수 없는 강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고 말했고, 경제에 밝은 염구(冉求)경제적으로 풍족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고 했다. 또 예()에 밝은 공서화는 예법을 통해 흐트러진 국가 기강을 바로잡겠습니다.”라 대답했다. 그러나 한쪽에서 비파를 뜯고 있던 증석은 친구들과 함께 강에서 목욕하고, 바람을 쐰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공자가 감탄하며, “나도 증석과 뜻이 같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평생 공자를 따라 다녔던 증석은 풍파를 겪을 때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기수(沂水) 강가에서 물고기 잡고 물장구를 치면서 놀던 때를 그리워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공자는 전적으로 공감을 표시한 것이다. 먼저의 세 사람이 인간사에 찌든 사람들이었다면, 증석은 전원(田園)의 소박한 생활을 잊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이처럼 마음에 들어 했던 제자의 아들이면서 또한 가장 어린 제자에 속한 증자에 대해서도 공자가 매우 아꼈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공자가 증자를 귀여워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증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충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효성이 지극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의원의 치료로 증자가 깨어났다.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이 효자이기 때문에 하늘이 살려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증자는 깨어나자마자 고통을 무릅쓰고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저의 주의가 게을러서 저지른 실수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힘들여 교훈을 주셨습니다. 손이 몹시 아프셨겠습니다. 근심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고 빌었다. 그러고 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거문고를 뜯으며 명랑하게 노래를 불렀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칭찬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과연 이것이 올바른 교육방법인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들이 훌륭한 학자로 성장했으니, 아버지의 영향력이 선하게 미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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