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현재 한국 사회를 성적을 기반으로 하는 능력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조희연 서울특별시 교육감의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적합한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능력주의라는 말은 기회의 공정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능력의 기준을 정하는 척도는 성적이니 우리에겐 자유국가의 묵시적 약속으로 자연스럽게 인정이 되었다. 하지만 소위 성적을 위한 조건은 이미 공정을 크게 벗어난다. 여기에 우연과 행운이 더해진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는 삶에 전혀 공정이라는 공식을 대비시키지 못한다. 특히 부()의 조건은 출발부터 공정을 크게 벗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조건 역시 당연한 능력의 공정으로 평가하고 순순히 받아들인다. 부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실 자체가 자유국가의 공정한 능력주의라는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전반기의 최대 평가치인 대학입시는 절반이 부모의 몫이다. 학생 개인의 능력은 안타깝게도 부수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만으로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는 학생이 2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현실이고 보면 부모의 재력은 능력이 되고 이렇게 얻은 능력은 다시 대물림이 된다. 작년 빅3 대학의 신입생 55%가 고소득 10% 가구에 속한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부모를 잘 만난 우연은 공정의 기반을 위협한다. 다시 말해 배경을 걷어낸 개인의 능력 측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정성은 이미 형평의 힘을 잃는다.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는 공정하며 성과는 노력의 결과라는 등식은, 자유성과주의적 자본주의의 핵심이라는 주장 즉 능력주의와 상통한다.

요즘 한국의 정치를 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정부가 들어서고 많은 발전이 있었음을 부인할 순 없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은 변하지 않고 있다. 노선을 타는 포퓰리즘과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굳건히 지켜지는 분파적 어젠다는 깨지지 않는 철옹성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의 능력에 앞선 편향성이다. 이 편향성은 때론 학력의 문제로 때론 학벌의 문제로 드러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학벌이 우선이지만 이러한 현상은 차별이라는 이상한 테두리를 구성한다. 민주주의 표본이라고 자칭하는 미국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학위 없는 자들에 대한 무시의 형태다. 하원의원은 95%가 대학학력 소유자이고 상원의원은 전원이 대학 학위를 소유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트루먼 대통령이 고졸이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갈수록 학력지상주의는 미국을 부여잡고 있다. 우리의 정치계는 이보다 훨씬 심각한 인격적 불평등으로 능력을 가리고 있다. 고학력자가 올바른 정책을 만들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를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지난 역사를 보면 정치적 판단 능력과 엘리트 대학 진학능력 사이에는 연관성이 거의 없다. 학력이 떨어지는 자들보다 가장 뛰어나고 똑똑한 자들이 정치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능력주의적 교만에 기초한 허구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사회적 대가의 상이함이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가는 기이한 현상은 공정의 착각이라는 현실의 구현이다. 출발부터 다른 기회와 뒷배의 불공정성을 우연이라는 좋은 배경을 만나지 못한 자신의 온전한 책임으로 인식을 해야 하는 능력주의는 이미 공정을 벗어났다.

이러한 사회적 불공정성에 경제적 논리가 더해지면 집단의 편향행동을 부른다. 여기에 정의가 자리할 곳은 없다. 집단이기주의가 존재할 뿐이다. 국가의 위기마저 이들에겐 기회가 된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팬데믹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정부와 과학 혹은 의학전문가까지 무차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현상은 전혀 정의롭지 않으며 경제라는 이권 앞에서 이미 평등을 잃는다. 공정 역시 이권이라는 이기적 사고 앞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이익을 위한 집단의 일방적 공격마저 능력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현대사회는 능력주의를 이미 벗어났으며 민주주의가 공정한 기회에 기초한다는 믿음은 착각이다. 이러한 현상을 마이클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 최대의 위기라고 평가한다. 능력주의의 완벽한 실천은 불가능하며 능력주의 장점의 시효가 만료 되었다고도 한다. 공정의 착시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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