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사람은 평생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산다. 모든 결정은 선택으로 이루어지고 그 선택은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 학교와 직장 그리고 배우자의 선택 등이 그렇다. 여기에서 조금 폭을 넓히면 가족과 국가까지 포함이 되기도 한다. 비록 자신이 중요 인물은 아니어도 개인이 행사하는 투표권은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안은 실제 선택과 관계를 갖는다. 여기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이 판단이다. 결정은 개인적 지식으로 치러지는 판단력의 결과다. 이번 서울과 부산의 시장 선거 역시 시민들은 저마다의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표를 행사했다. 당선자의 거짓과 부도덕성을 믿었던 사람도 있었고 낙선자 배경이 되는 당의 무능력과 결단력의 부재를 판단의 근거로 삼았던 시민도 있었음직하다. 어느 쪽에서 들여다보느냐 역시 본인의 판단이다. 진실은 항시 부차적이며 한참 후에 드러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이니 결과는 진실 판단의 앞에 위치한다.

선택이라는 행동은 역사를 만든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나라의 고비마다 선택이 있었고 그것은 운명을 좌우했다. 때로는 극과 극의 길을 걷게도 한다. 세종의 아들 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단종이 뒤를 이었다. 세조의 야심은 어린 조카를 죽음으로 내몰고 왕의 자리를 탐했다. 그리고 성삼문과 신숙주의 선택은 운명을 바꿨다. 성삼문은 죽음으로 성리학의 중심사상인 의와 예를 후대에 전했고 신숙주는 삶을 택함으로써 흔들리는 조선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행적을 남겼다. 이른바 선택의 역할이다.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남긴 영향이 그대로 역사가 되었다. 시작은 충신과 배신이지만 나라에 미친 영향은 둘 다 중요하다. 성삼문의 충이라는 미명과 신숙주의 변절이라는 오명이 교차하는 지점이 없진 않지만 백성을 위해선 신숙주가 옳았고 기강을 위해선 성삼문이 옳았다. 다만 잘 변하는 녹두나물을 변절의 의미를 담아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했다는 데에서 신숙주의 살아남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우회적으로 전하고 있을 뿐이다.

임진왜란은 두 명의 통신사 판단에서, 인조반정은 군주에 관한 최대의 오판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지만 국가의 운명은 크게 뒤틀렸다. 통신사는 당리를 우선으로 하는 판단으로 온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넣었고, 인조는 광해의 현명함을 욕심으로 찬탈해 나라를 망쳤다. 그리고 선조와 함께 조선 최악의 군주로 이름을 올리는 수모를 당했다. 삼전도의 굴욕은 스스로 만든 결과였다. 반정 당시 공신으로 이름을 올렸던 김류, 감자점, 이귀, 이괄 등 서인들의 면면을 보면 상황은 어렵지 않게 추측이 된다. 모두 자신들의 부귀와 영달을 위한 선택이었고 그곳에 나라를 위한 진심은 없었다. 이렇게 중요한 선택은 항시 이기적이다. 이번 서울과 부산의 지역 선거 역시 다르지 않은 양상을 보여준다.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선택을 했지만 다분히 이기적이다. 진실은 때로 반대편으로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이기적인 판단은 반대편까지 들여다보는 행위를 본능적으로 꺼린다. 자신의 이기심에 조금이라도 금이 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알고 행하는 판단은 알량한 양심에 누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비겁함이 깔려 있지만 애써 모르는 척 함이 정신 건강에는 이롭다. 조선시대의 선택이 나라를 망쳤다는 예시는 아직 진행형이다. 선택은 역사의 기초를 만드는 사초(史草)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최근 민주당의 이어지는 사과에 주어가 없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운 건 나만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명확한 주어를 제시한 사과로 판단하고 당당하다. 결과는 다시 내부의 분열을 이야기하고 심지어 배후설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문제인 것이다. 13%의 지지층 이탈 원인을 정작 지지층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사과를 선택했으니 결과 역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개혁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다 부상한 동료를 자신들의 정당성을 보장 받기 위해 다시 소환하는 행위는 비겁하다. 그리고 부도덕과의 협치는 같은 부도덕이다. 180석을 만들어준 국민이 원하는 방향은 부도덕과의 협치가 아니라 피나는 개혁이다. 잘못된 선택은 큰 버림을 받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음엔 이탈이 13%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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