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대통령이 미국을 다녀왔다. 여권은 성과에 만족하며 업적 홍보에 여념이 없고 야권은 회담 사안의 모든 내용을 폄하하고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에겐 국익에 우선하는 권력의 단맛 외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하는 극히 기초적인 도덕관념까지 철저히 무시함은 물론 국가를 혼란으로 몰아넣을 궁리만 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바이러스 문제를 흔들어대는 모습은 위험해 보인다. 오늘도 백신 관련 부풀린 뉴스가 쏟아지고 노인들은 접종을 기피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통령의 미국 홀대론과 햄버거, 일본 스가 총리와의 비교, 55만 장병에게 제공 되는 미국의 백신 선심 등을 왜곡하는 언론의 낭비성 보도가 국민을 온통 짜증으로 몰아넣고 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 언론사와 방송에서 근무하는 기자들의 수준이라고는 인정이 힘들다. 그래서 가장 다루기 싫은 내용이 바로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권 이야기이기도 하다.

카오스의 현실을 돌려 세우고 시골 작업실에 틀어박히면 순식간에 세상은 변한다. 전혀 다른 세계다. 전쟁터를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복숭아밭을 가꾸며 여생을 보내던 어느 장군의 느낌이 이러했을 것이다. 삶의 모든 변화는 인간으로부터 시작되고 끝이 난다. 뒤엉킨 인간사의 그물을 벗어나는 순간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숨어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복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사회적 구조는 소위 은둔이라는 호사를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만큼 인간은 천라지망에 가까운 사회의 복잡한 섭리를 스스로 만들어 놓고 갇혀버렸다. 그나마 이따금이라도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려 노력이라도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자각 속에서 하루를 살지만 그럴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전혀 모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때로는 이라도 때려보며 살자는 이야기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삶에 집착한다. 하지만 맹목적일 가능성이 많다. 깊은 생각은 복잡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방해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천착이라는 말을 쓴다. 당리당략과 달콤한 권력을 찾아 온갖 추태를 벌이는 정치권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회의와 환멸을 느낀다면 최선을 다해 평범함을 추구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평범하게 산다는 기준은 모호하다. 그냥 자신의 마음속에서 잣대를 끄집어 내야하지만 부와 권력의 천착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바로 평범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말머리는 다시 내려놓음으로 돌아가지만 솔직히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인간에겐 내려놓음이라는 본능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은 타인을 딛고 일어서야 적성이 풀리는 감정이 지배한다. 네안데르탈인의 멸망이 여기서 비롯되었고 크로마뇽인과 그리말디인의 끝없는 부족 간 전쟁사 역시 이러한 본성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호모사피엔스가 아니라 워(war)사피엔스다. 이들은 이웃 부족을 침탈로 그치지 않고 거의 몰살을 시키는 특성을 가졌었다. 어쩌면 요즘 인간의 권력을 향한 무차별 공격성은 여기서 기인한 DNA일 것이다. 악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특성을, 악하다는 감성을 느끼지 못하는 데에서 찾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끼니를 찾는 동물,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축재(蓄財)를 하는 동물 그리고 지구의 모든 생물들에게 공통의 천적이 되어 있는 동물, 바로 인간이다.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인간이 인간다워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하지만 인간다움이 어떠한 것인지에는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타고난 본능을 유지하는 것이 인성인지 마음을 다듬는 공부를 통해 욕심을 초월한 모습이 인성인지 모르지만 평화가 후자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시골 산 밑 작업실에서의 생활이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은 지극히 개인적 느낌이다. 이따금 가져보는 혼자의 시간이 의도치 않음에서 오면 외로움이지만 스스로 원하면 한가로움이 된다. 육신 건강을 위해 간헐적 단식이 필요하듯 정신 건강을 위해 간헐적 한가로움을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요즘 정치권 다툼이 정신건강에 너무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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