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우리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정점이었던 시기는 언제일까. 아마 대부분 사오십 대를 말할 것이다. 전에는 이 시기를 불혹과 지천명이라 칭했다. 만사에 혹하지 않고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라는 뜻이다. 물론 현실과는 약간의 괴리가 있지만 그래도 시사의 의미는 대충 마음에 와 닿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넘긴 육십이라는 숫자는 예전의 이순(耳順)’ , 귀가 순해져서 다른 사람의 말을 많이 들어주는 좋은 의미를 벗어나 때 아닌 새로운 문맹세대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세계적으로 낮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대학 진학률은 반대로 최고 수준으로 높다. 가장 우수한 국민교육비율을 자랑하는 독일이 의외로 30%에 불과한 진학률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은 45%, 이웃 일본은 35% 내외의 수준이다. 한국은 놀랍게도 현재 70%에 가까운 진학률을 보이고 있다. 졸업에서는 더욱 차이를 보인다. 우리는 거의 졸업을 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대학들은 졸업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과연 우리가 세계 최고의 교육국임을 자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솔직히 세계 속에서의 우리 일류 대학 위치는 너무 초라하다. 결국 학업을 목적으로 하는 진학보다는 졸업장 위주의 진학이라는 지적을 벗어나기 힘들다. 목적이야 어떻든 이렇게 높은 교육의 관심은 일단 우리에게 문맹으로부터의 자유를 선물했다. 어쩌면 우리 조부모님 세대의 문맹의 한을 우리 부모님 세대가 가난의 굴레를 부여잡고 풀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세대부터는 문맹이 거의 없으며 세계에서 가장 상위권의 문명국이 되었다. 하지만 이순세대 이후의 비극은 짧은 영화를 뒤로하고 다시 시작되었다. 문맹보다 더욱 가혹한 디지털 맹의 시대를 맞은 것이다. 너무 빨리 변화하는 디지털 문명은 소위 기성세대의 혼을 빼놓고 있다. 자신과 이미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핸드폰이지만 MZ세대를 벗어나면 이미 조금씩 무뎌지다가 육십 세대를 넘어서면서 그냥 전화기가 되어 버린다. 여기에 조금 감이 있는 사람도 문자와 ’, 음악, 사진, 유 튜브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기능의 20%만 사용해도 잘 쓰는 편이다. 하지만 이건 핸드폰의 경우일 뿐이다. 이미 우리 주위는 모두 디지털화 되었다. 사진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다. 가장 많이 소통하는 TV역시 이미 기성세대의 상식을 멀리 벗어나 한참을 앞서 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내가 즐겨 쓰는 것이 문맹보다 무서운 것이 디지맹이라는 말이다. 물론 몰라도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과 차별화 되어 있다는 것이 복이며 화다. 인간의 존재 가치를 생각으로 정의하는 데카르트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생각하고 사유하는 동물이 인간이다. 문명의 최대 이기라는 디지털을 누리지 못한다는 의미는 과거 문맹으로 책이나 편지를 보지 못하던 불행과 맞먹는다. 순식간에 다시 찾아온 문맹의 위기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디지털 문명은 단순한 문자 익히기와는 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냥 살면 문제는 없다. 직업이 아니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날로그가 채워줄 공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음악은 LP만 남았고 사진은 필름이 남았지만 원료는 모두 디지털이다. 필름으로 촬영을 해도 인화는 디지털로 변환해서 하며, LP판은 디지털 원음 MQS를 아날로그 스크래치로 새겨 넣을 뿐이다. 이미 세상은 01이라는 숫자 두 개로 장악이 되어버렸다. TV도 켜지 못해 손주를 불러대는 상황이 되기 전에 디지털 맹을 최대한 벗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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