芝堂 이흥규 시인

정유재란 당시 일본엔 아직 주자학이 보급되지 않았다. 원래 일본은 문()보다는 무()를 중시하였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하던 전국시대는 글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일본의 유일한 지식층이었던 승려들만이 불경과 함께 유교를 공부했다. 수은 강항(姜沆) 선생은 왜적에게 포로로 잡혀가 여러 번 탈출을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하고 새로운 도시 후시미성 즉 지금의 교토로 압송된다. 바로 이곳에서 강항과 후지와라 세이카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당시 승려였던 후지와라는 일본에 온 조선통신사를 만나 한시와 유교 경전을 접하게 되면서 주자학에 매료되었다. 그러던 차에 후지와라는 교토에 이송된 강항의 소식을 듣게 되고 수은을 직접 찾아왔다. 말이 통하지 않던 두 사람은 필담으로 대화를 나눴다. 일본 교토의 천리대학에는 강항과 후지와라가 나눈 대화 내용이 남아있다. 강항의 학문적 깊이에 탄복한 후지와라는 그 길로 승복을 벗고 강항의 제자가 된다.

이렇게 후지와라에게 전해진 주자학은 막부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강항과 후지와라는 사서오경에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내용을 쉽게 풀어서 책을 만들었다. 일본에 주자학이 보급된 데에는 후지와라라는 일본 승려가 있었고 그 뒤엔 수은 강항 선생이 있었다. 수은 강항 선생은 이렇게 해서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것이다. 강수은 선생이 쓴 문집으로는 수은집(睡隱集)과 간양록(看羊錄)이 있는데 간양록은 일본 기행문이다. 일본 주자학의 대부로 불리는 수은 선생은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유봉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매우 총명한 아이로 맹자정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한 소년이 서당에 가는 길에 느티나무 아래서 책 장수를 만났다.

책 구경 좀 할 수 있을까요?”하고 물으니 책 장수가 보기에 이제 천자 책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였을 어린애가 아닌가. 이에 착 장수는 네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살 수 있겠느냐?”하고 되물었다. 소년은 스스럼없이 읽어보고 살 만하면 사지요.”하고 대답한다.

그럼 보려므나.” 허락을 얻은 소년은 그 자리에서 맹자 일곱 권을 한참 동안 뒤적여 본 뒤 잘 보았습니다.”하고 책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책 장수가 아니, 책을 살 생각이 없단 말이냐?”하고 물으니 이미 책 내용을 다 알았으니 책이 소용없습니다.”한다. 괘씸한 생각이 든 책 장수는 소년을 골려 줄 양으로 네가 정말 다 알았다면 나와 내기를 하자. 네가 맹자 한 권을 다 외우면 내가 이 책을 너에게 줄 것이고 네가 만일 한 곳이라도 틀리면 이 책을 사야 한다.”하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한자리에서 잠시 살펴본 맹자 한 권을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고 줄줄 외우는 것이 아닌가! 그때야 책 장수는 이 소년이 신동임을 알고 내기에서 내가 졌으니 이 책을 너에게 주마.”하고 책을 주려고 하자 소년은 내용을 다 외우고 있으니 받지 않겠습니다.”하며 돌아갔다. 그러나 책 장수는 이 신동과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어 느티나무 가지에 책을 매달아 놓고 떠나갔는데 이 나무가 맹자나무요, 그 곁에 세운 정자가 맹자정이다.

 

이는 영광군 불갑면 안맹리에 전하는 설화로 수은(睡隱) 선생의 일곱 살 때 일이라 한다. 그러나 지금 그 자리에는 정자나무가 없어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이에 뜻을 모은 종중의 유림들이 이를 기리기 위해 맹자정 대로변에 수은 선생의 기적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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