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신문 편집위원·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한국을 사랑한 인권운동가 펄벅

1960,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P)79달러였다.

굳이 현재의 화폐단위로 치자면 95천여원이다.

당시 소득의 400배가 넘는 32천달러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가족들의 한 끼 외식비도 안되는 95천원으로 1년을 버텨내야 했던 암울한 시대였다.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국토는 황폐화되고 기아선상에 내몰린 국민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었지만 권력에 눈이 먼 정치인들의 이전투구에 국민들의 배고픔은 뒷전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암울한 시절이던 1960년대 초, 세계적인 인권운동가이자 대지라는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미국의 펄벅여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유일한 박사(독립운동가이자 유한양행 창업자)와의 인연을 통해 한국의 독립운동에 큰 감명을 받았던 그가 한국인들의 정신적 뿌리를 직접 찾아보기 위해 한국을 공식 방문했던 것이다.

펄벅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중국으로 이주를 하면서 주로 중국을 무대로 집필활동을 했지만 한국방문 후로는 한국으로 이주해 정착을 했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내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이지만 다음으로 사랑한 나라는 한국이다.”라는 구절을 유서에 남겼을 만큼 한국을 아끼고 사랑했던 인권운동가였다.

사람이 보석인 나라

한국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을 무렵인 1960, 한국을 방문했던 펄벅여사가 신라의 천년고도인 경주를 들렀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시골마을을 여행하던 그에게 무척 특이한 광경 하나가 목격되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소달구지와 함께 걸어가는 시골 농부가 자신의 지게에 볏단을 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의아했던 그가 시골 농부를 향해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또 타고 가면 될 것을 왜 힘들게 짐을 지고 걸어갑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오늘 우리 소가 일을 많이 해서 고생했으니 내가 짐을 나눠지고 갑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펄벅여사는 훗날 그의 글에서 이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적었다.

만일 서양의 농부였다면 소달구지 위에 짐을 싣고 자신도 그 달구지에 올라타 편하게 귀가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한 연설에서 하루종일 주인을 위해 고생한 소의 짐을 덜어주고자 자신의 지게에 볏단을 나눠지고 소와 함께 걸어가는 한국농부의 모습을 보며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고백을 했다.

또 한 번은, 초겨울 여행을 하던 중 마저 따지 않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감을 발견하였다.

동행한 기자에게 식량이 적은데 저 감은 왜 따지 않느냐고 묻자 그 기자는 저건 겨울에 배고픈 새들이 먹으라고 남겨둔 까치밥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들은 펄벅여사는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며 탄성을 질렀다.

내가 한국에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다.

이 것 하나만으로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한다며 감탄을 했다고 한다.

그 후 한국에 정착해 이름도 한국식인 박진주로 바꿔 부른 그는 펄벅재단을 설립한 뒤 1967년 부산시 심곡동에 소사희망원을 건립하고 전쟁고아나 혼혈아동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으로 한국인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게 된다.

사람의 정이 메마른 속물 같은 나라

펄벅여사는 죽는 날까지 한국을 일러 보석 같은 나라라고 극찬을 했다.

그의 일생을 바쳐 헌신을 했을 만큼 감동을 주었던 한국의 진정한 가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가난한 나라 한국인들의 숨겨진 내면을 깊숙한 통찰력으로 바라봤던 그가 발견한 한국의 보석은 바로 국민들의 훌륭한 품성과 정이 아니었을까.

전쟁고아인 아동들을 입양하여 보살피고 살아있는 갈대등 한국을 배경으로 한 3편의 걸작소설을 출간했을 만큼 한국을 사랑하고 아꼈던 소설가 펄벅,

그가 살아있다면 32천달러 시대를 살아가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돈의 노예가 되어 정신적 공황과 갈등을 겪고 있는 요즘 세대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풍요로운 나라의 사람들이라며 지금도 보석 같은 나라라고 감탄을 했을까.

아니면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정신적 풍요로움은 사라지고 사람의 정마저 메말라 가는 속물 같은 나라라며 혹여 탄식을 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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