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신체, 체질(1)-한비자

이번 호부터는 질병에 시달리거나 신체적으로 특이했던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233)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한나라 왕의 첩의 몸에서 태어났다. 태생으로 보면 귀족 출신임이 분명하지만, 날 때부터 말더듬이여서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자랐다.

그런데 사실 말을 더듬는 사람들의 경우, 심리적 요인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한비자가 그의 출생과 관련하여 남에게 말하지 못할 부분이 있거나 혹은 말을 잘못했다가 죽을 수도 있는 시대상황 속에 놓여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볼 수도 있겠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한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군주가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을 때 재물의 이익을 말하면 속물이라 하여 깔보고, 반대로 그가 재물의 이익을 바라고 있을 때 명예를 이야기하면 세상일에 어둡다고 욕한다. 군주가 비열한 짓을 하려 할 때 그것을 아는 체 하면 목숨이 위태롭고, 임금에게 불가능한 일을 강요하여도 생명이 위험하다. 군주 앞에서 어진 임금의 이야기를 하면 자기를 비방하는 것이라 의심하고, 말을 꾸미지 않고 표현하면 무식한 자라 업신여기며, 여러 학설을 끌어다 말하면 말이 많다고 흉을 본다.”

한비자가 말을 조심했던 것은 그의 성장 과정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소년 시절에 이사(李斯,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는 데 기여하였으나 분서갱유 사건을 통하여 많은 유학자들을 생매장하였음)와 함께 대유학자인 순자(荀子,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와 반대로 성악설을 내세웠음)에게서 배웠다. 당시 한비자의 조국인 한나라는 진나라에게 많은 땅을 빼앗기고 거의 멸망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에 마음이 답답해진 한비자는 임금에게 편지를 띄워,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건의하였다. 그러나 임금으로부터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에 울분이나 풀어보겠다는 마음에서 10만여 자나 되는 책을 썼는데, 이것이 바로한비자이다. 이 책을 본 진시황은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한비자를 얻기 위해 진시황은 한나라를 공격했고, 한나라는 즉각 한비자를 진나라로 들여보냈다. 진시황은 그의 탁월한 견해를 높이 평가하였으며, 또한 크게 대접하였다. 그러나 친구인 이사는 학생 시절에 자신이 한비보다 못한 줄을 이미 알고 있던 데다, 그가 시황의 총애까지 받게 되자 심한 질투심을 느꼈다. 이에 그는 한비자를 모함하기 시작하였고, 시황은 이사의 간교한 말만 믿고 한비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렇지만 그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이에 조바심이 난 이사는 하수인의 손에 독약을 보내 한비자 스스로 자살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한비는 이사의 모함을 눈치 채고, 여러 차례 시황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끝내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결국 그의 억울한 죽음은 동문수학(同門受學-한 스승 밑에서 함께 배움)한 친구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진시황의 뜻이 없었다면, 천하의 이사(李斯)라 한들 친구를 죽음에까지 몰아갈 수 있었을까? 이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한비자가 죽음을 당한 것은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군주를 능멸(?)한 것이 해를 당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보건대,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글을 포기하고 평생 침묵하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처럼 말더듬이 흉내를 내며 살았더라면, 친구로부터 통한의 배신을 당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 저서거꾸로 읽는 철학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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