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벤담

영국의 공리주의 윤리학자 벤담(1748~1832)은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치는가 하면, 바이올린과 오르간을 열심히 익히도록 했다. 이런 덕분에 벤담은 일곱 살 때부터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하고, 얼마 후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시를 짓기도 했다.

벤담은 상당히 조숙한 편이어서 다섯 살 무렵부터 철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친구를 사귀지도 못하고 공부에만 매달려야 했던 어린 시절을 그 자신은 매우 끔찍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어린 시절 벤담은 몸이 약했고,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아이였다. 식모에게 귀신 이야기를 듣고 집밖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로 겁이 많아,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어머니나 할머니와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벤담은 꽃을 아주 좋아하고 식물채집을 즐겼다. 그러나 또래 소년들이 즐기던 낚시와 사냥은 매우 싫어하였다. 동물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통은 악이라는 그의 사상이 어린 시절부터 싹트기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

일곱 살에 웨스트민스터 스쿨(왕립 명문학교)에 입학한 그는 열 두 살의 나이로 옥스퍼드대학 입학을 허가 받는다. 여기에는 그 아버지의 극성스런 교육열, 즉 영재교육이 한 몫 거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역시 정상적인 교우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동료 집단으로부터 왕따를 당했던 것. 철부지 짓을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조숙해 건방져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고 하여 공부에 취미를 붙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에 더해 영국 국교회의 신앙 맹세를 강요받으면서, 종교에 대한 반감까지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벤담은 3년만인 열다섯 살의 나이로 대학을 졸업한다. 그리고 스물한 살에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변호사 업무를 매우 싫어했다. 변호사란 직업 자체가 무의미한 데다, 돈이 많이 드는 소송만 부추기는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벤담은 변호사보다는 법의 기초를 연구하는데 더욱 몰두하게 된다.
벤담은 스물여섯 살에 메리 던클레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고아 출신인 데다 가난하기까지 한 그녀와의 결혼을 한사코 반대했다. 벤담이 저서를 통해 유럽 전 지역에 알려질 무렵, 사라 스트레톤이란 여자를 만나 청혼을 한다. 그 후 6개월 동안 정성을 다했다. 이 여성의 경우, 부잣집의 상속녀로서 아버지의 마음에도 들 것이 분명해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자 본인의 거절로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벤담은 이 시기에 또 한 백작의 조카딸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그녀 역시 벤담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편지를 여러 차례 주고받으면서도 고백을 하지 못했다. 어렸을 적부터 소심했던 성격이 이때까지 이어졌던 것. 끝내 맘속에 담아둔 사랑을 말하지 못한 채,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리고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1805, 예순 살이 다 되어서야 겨우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마침내 벤담은 1832년 자신이 정성을 쏟았던 선거법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우리로서는 어린 시절 그토록 나약하고 내성적이었던 벤담이 어떻게 하여 급진파의 리더가 될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저서거꾸로 읽는 철학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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