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 있다. 보통 어느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가장 말단 행정기관장인 면장이라도 한다는 뜻으로 사용이 된다. 하지만 원래의 쓰임은 전혀 다르다. 이 말은 뜻밖에도 공자와 그의 아들 리()와의 대화에서 유래한다. 조금 어렵지만 기왕이면 본문을 살펴보자. 논어 제17편 양화(陽貨)편에서 공부를 소홀히 하는 아들을 향해 자위백어왈, 여위주남·소남의호, 인위불위주남·소남, 기유정장면이립야여”(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墻面而立也與/공자가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였느냐? 사람이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문장은 정장면이립(正墻面而立)’이다. 시경의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면 감흥이 남 다르고 사물을 잘 볼 수 있으며 인과관계도 좋음은 물론 사리에 어긋남도 없다는 타이름과 함께 그렇지 못하면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여기서 담벼락을 마주함은 정장면(正墻面)이고 담벼락을 면할 수 있다는 말은 면장면(免墻面)이다. 이를 두자로 단순화해서 면장(담벼락을 면함)이라고 한다. 그래서 면사무소의 면장(面長)이라는 행정관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어다. 결국 담장이라는 막힘을 거두어 낼 수 있는 수단은 인간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양의 물질문명이 우리의 저변에 단단히 또아리를 틀고 자리를 잡으면서 막힌 담장과 거기에 그려진 문명의 허상을 상대로 적당한 타협을 시도했지만 현실은 그에 상당하는 부작용만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지식인들은 동양의 사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목하 공부 중이다. 어떤 이는 중국의 학문으로 치부하며 평가절하 하지만 천년 이상을 쌓아온 우리의 정신문화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단지 우리의 찬란했던 고대사를 잃었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고조선은 중국 본토에 있었고 상(/)나라가 동이족이었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갑골문자의 시작은 상나라였고 문자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이다.

알아야 면장이라는 속어는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다시 소환 되었다. 일반상식을 SF식으로 만들어 풀어버리는 현묘함은 물론이고 취임도 하기 전에 칼부터 휘두르는 용기에 휘하 부장들은 환호하지만 절반 이상의 국민은 경악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알지 못함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원인에서 기인하지만 지켜보는 국민은 두렵다. 역사적으로 나라는 우군(愚君)이 망쳤지 우민(愚民)이 망치지 않았다. 어리석은 임금은 간신의 장막에 가려서 민의를 살피지 못했고 이렇게 무너지는 나라는 민초가 다시 세운다. 자고로 어리석은 주군은 있어도 어리석은 백성은 없었다. 국민이 힘겹게 쏘아올린 경제 10국의 축포를 무색하게 만들 유력한 후보가 다름 아닌 정치권이라는 것이 그 방증이다. 유난히 맑지 못한 우리 정치인의 모습에서 다시 절망을 예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무섭고 두렵지만 국민의 선택을 다시 한 번 믿어야 한다. 2개월이 체 남지 않은 지방선거는 그래서 중요하다. 시통령 혹은 군통령으로 통하는 지방의 수장이 갖는 권한은 막강하다. 그런만큼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능력과 지혜는 필수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 되었지만 의외로 분위기는 차분하다. 어쩌면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 없고 회전문이라는 데에 원인이 있겠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식상함에서 오는 실망감이기도 할 것이다. 장기간의 팬데믹으로 무너진 군민의 답답한 담장을 치워줄 후보가 절실한 이 시기에 물질을 떠나 정서를 어루만저줄 면장(免墻) 후보는 누구일까.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동물이 아니다. 버리는 음식, 먹는 음식이 반반인 세상이다. 시경이라는 문화로 면장(免墻)을 만들어 줄 당선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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