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신문 편집위원·영광군가족센터장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안수정등(岸樹井藤)

-‘안수정등이란 절벽 위에 서 있는 나무(岸樹)와 우물에 드리워진 등나무 넝쿨(井藤)을 뜻하는 말로 불교경전인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설화이다.-

한 나그네가 아득히 펼쳐진 넓은 벌판을 걷다가 갑자기 사방에서 사납게 일어나는 불길을 만났다.

나그네는 불길에 둘러싸여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 성난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나서 나그네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었다.

코끼리를 피하려고 죽을 힘을 다해 달리다 절벽 앞에 다다른 나그네는 더 이상 갈곳이 없음을 알았다.

이때 천우신조로 우물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마침 등나무 넝쿨이 그 우물 안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우물 속으로 내려가려는데 우물 바닥에는 커다란 구렁이 세 마리가 입을 벌리고 나그네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란 나그네가 다시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올라가려고 위를 올려다보니 위에는 독사 네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그네는 내려갈 수도 없고 다시 올라갈 수도 없는 진퇴양란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더욱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있는 팔의 힘이 점점 빠져 기력을 다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설상가상 등나무 넝쿨을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면서 갉아 먹고 있었다.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포기하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어디선가 진한 액체가 얼굴에 떨어졌다.

혀로 핥아 먹어보니 꿀이었다.

등나무 줄기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허기도 지고 몹시 갈증도 났던 이 나그네는 달콤한 꿀맛에 빠져 방금까지 두려워했던 상황은 까맣게 잊어버린 체 떨어지는 꿀 한 방울을 받아먹으려고 온 정신이 팔려있는 것이었다.

사바세계의 어리석은 중생

위 이야기는 불교경전인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설화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꿀맛이라는 쾌락에 빠져드는 인간의 어리석은 삶을 비유하고 있다.

들판에 사납게 번지는 불길은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욕망의 불길(欲火)을 뜻한다.

또한 화난 코끼리는 언제라도 부지불식 간에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죽음의 그림자로 무상(無常)한 인생을 비유한 것이다.

우물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의지하는 세속의 권력과 부, 인간관계 등을 뜻하며 등나무 넝쿨은 그런 관계 속에서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목숨줄이다.

그러나 이 목숨을 밤과 낮을 뜻하는 두 마리의 흰 쥐와 검은 쥐가 잠시도 쉬지 않고 하루하루를 갉아먹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세 마리의 구렁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우물의 밑바닥은 황천으로 세 마리 구렁이의 의미는 탐진치(貪瞋癡: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三毒)을 뜻한다.

혀를 날름거리는 네 마리의 독사는 우리의 몸을 이루는 지(), (), (), ()4(四大)를 뜻하며 다섯 방울의 꿀은 감각적 쾌락인 오욕락(재물욕 명예욕 색욕 식욕 수면욕)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경전의 가르침은, 인간이 탐진치(貪瞋癡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3()에 빠져 무상을 깨닫지 못한 체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오욕락의 꿀방울이라는 달콤한 쾌락에 빠져 목숨을 매는 안타까운 현실을 비유하고 있다.

얼마 전, 필자는 평상시 건강관리를 잘못한 벌(?)로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졌었다.

건강을 잃고서야 깨달은 세상은 너무나 허무했다.

병상에 몸을 의지하고서야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욕심도, 성냄도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어이하여 탐진치의 어리석음과 오욕락의 부질없음을 내 일찍이 깨닫지 못했던가 후회하고 또 후회를 해도 이미 때는 늦어버린 후였다.

달콤한 꿀 한 방울의 쾌락에 빠져 밤낮으로 생명줄을 갉아 먹히는 것도 잊고 살았다.

이 얼마나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랴.

밤마다 켜켜이 밀려오는 회한 속에서도 천만다행으로 손가락까지는 잃지 않았기에 평소에는 오만한 생각으로 가볍게만 여겼던 경전의 가르침을 들어 절절한 후회의 고백을 대신해 보았다. 영광신문 구독자님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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