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 선거부터 지방선거까지 이어지는 혼란스러움에 걱정이 앞선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판이 이른바 아사리판이 되고 있다.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상식을 벗어나더니 취임 후에는 한 차원을 높였다. 수십 년 전의 땡전 늬우스가 다시 성만 바꿔 등장하고 언론은 대놓고 상황과 움직임을 중계방송하고 있다. 부인의 슬리퍼와 후드 티, 백화점에서 구두를 사고 심지어 낮술 논란까지 찬양 일색이다. 아무리 언론이 갈 길을 잃었다지만 짜증을 넘어서 걱정이 앞선다. 대통령이 출퇴근하는 이상한 모습에 일단 놀랐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백화점에 들러 신발을 사는 모습까지 따라다니며 중계를 하는 언론엔 두손 두발 모두 들었다.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발생하는 시민의 불편은 안중에 없고 높은 자리에 임한 특권을 연예인 놀이하듯 즐기는 국민의 대표라니 이해가 힘들다. 비서관 임명은 더욱 경이롭다. 안보에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올라도 좋다는 주장을 펴는 인물이, 성교육을 맡아야 하는 곳엔 성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이, 조국 교수를 수사하고 멸문지화를 안겼던 인물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이 되었다. 특히 법무부 장관 임명자는 딸의 입시문제로 미국에서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 뉴욕타임즈 기자가 제보를 받고 있으며, 한인사회에서는 성명서까지 발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이 내세운 공정과 상식은 단순하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틀렸고 공정이 아니다. 그래서 취임식에선 반지성주의라는 말이 나왔다. 자신들에게 반하는 부류는 모두 반지성주의자들이다. 돌려 말하면 자신들만 지성 주의가 된다. 위험한 생각이지만 이를 반박하거나 논하는 기자는 없다. 오히려 찬양이다. 교회의 예수 찬양보다 심하다. 그가 서른 다섯 번을 외친 자유는 자신들의 테두리 내에서만 존재한다. 거부하는 것은 반지성주의자들의 외침이 되고 자유의 틀을 벗어난다. 그래서 이들에겐 약속이라는 신뢰 역시 중요하지 않다. 진리가 내 안에만 있다는 생각은 국민과의 약속을 새털보다 가볍게 만든다. 특히 사랑을 받은 이십 대 남들과의 공적 약속은 가볍게 깨졌다. 병사 월급은 결국 이재명 공약인 순차적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피복비까지 깎였다. 수석실 폐지와 직원 30% 감원 역시 흐지부지로 돌아섰다. 만만한 국방부는 사무실 뺏기고 15천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이 삭감됨은 물론 유사시엔 나가 싸워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공약이 천금이 아니라 새털이다. 하지만 언론은 말이 없고 찬양가를 부르며 활동을 중계방송하기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과 연예인을 거의 구분을 못하고 있는 현상이다.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역동의 시절에 처한 국가를 흔들림 없이 끌고 가야 할 역량이 있는 것인가. 자꾸 걱정이 되는 게 나만은 아닌 듯싶다. 운전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면허만 내고 대형 버스의 운행을 맡은 형국이다. 그래도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니 믿어야 한다. 비록 출퇴근으로 도로가 막히고 통신이 끊겨도 이해를 해야 하고 지각을 하고 칼퇴근해도 대통령이니 참아야 한다.

우리 영광군 역시 문제가 많다. 군수 선거가 진흙탕으로 변하고 있다. 군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보겠다고 나선 자리가 본질을 잃고 있다. 고소 고발에 의문의 편지는 물론 다시 해명까지, 네거티브인지 포지티브인지 군민은 혼란스럽다. 정치판에 뛰어들려면 시궁창에 발 담그고 오물에 엎드릴 각오를 하고 덤빈다지만 좁은 지역에서 이건 아니다. 이렇게 당선이 된들 결국 마주치며 살아야 할 상대를 어찌 대할 것인지 궁금하다. 선거판이 싸움판으로 변하고 원수를 만들어내는 진검승부 판이 되어 버렸다. 정치의 의미는 날아가고 편을 갈라 이권 다툼의 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더욱 걱정된다.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 국민을 걱정하는 세상이 아니고 국민이 정치인을 걱정하는 세상이 되었다. 제발 공약으로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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