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부산에서 남해안을 거쳐 서해안을 따라 인천, 서울을 경유, 경기도 파주까지 연결되는 국도 77호선은 총 연장 897km이며 우리 나라에서 가장 긴 도로로서 서남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그 도로의 디테일(Detail)이 서해랑길이다.

서해랑길은 국도 77호선중 서해안의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길이며 그 시작은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이고 끝지점은 전남 해남군 땅끝이다.

31개 기초자치단체가 연결되어 있다.

걷는 구간은 109개이고 그 길이는 무려 1800Km.

국도 77호선이 자동차 여행길이라면 서해랑길은 도보 여행이 더 걸맞는 길이다.

서해바다랑 함께 가는 길.

도로명 자체에서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함축되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염산면 향화도에서 홍농읍 진덕리 한수원 한마음공원 뒷쪽 덕개미 까지 79.1km가 서해랑길 영광구간이다

서해랑길 전체구간 중 영광구간에서만 나타나는 유일한 특징이 있는데 바로 독특한 지명(地名)이 그 것이다.

우리나라 바닷가 지명은 대부분이 포()자 돌림을 따른다.

경기도 강화군의 외포 후포 황산포 ...를 비롯해서 서울지역의 마포 영등포, 충남 당진군의 맷돌포 삼길포 벌천포...태안군의 만리포 구름포 백리포 천리포...보령군의 무창포 마량포 ...군산의 하제포...부안군의 심포 고사포 격포 줄포 송포...

고창군의 구시포 고리포...등 그렇게 이어진 포자 지명은 서해안 고창군의 끝 지점인 상하면의 고리포를 끝으로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영광의 서해랑길이 시작되는 덕개미에서부터 시작해서 가마미 선창개미 자갈개미 구시미 대치미 동백구미 석구미 굴미 논지미 섬배미 등의 미()자로 이어지다가 영광구간이 끝나는 함평군에서부터는 거짓말 같이 미()자 지명이 사라지고 주포라는 포자 지명으로부터 시작해서 남해안을 거쳐 함경북도 두만강 하구에 이르기까지 거의가 다 다시 포()자 돌림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특징은 영광지방의 굉장히 독특한 지형적 구조와 무관하지 않으며 제주도의 삼두구미(三頭九尾:영광 해안의 좌우두 초두 당두라는 지명과 꼬리미자 의 9개 지명) 신화나 타지역에 비해 강신무보다 세습무가 득세하던 영광의 무속 신앙. 역사, 문화, 자연환경, 샤만이나 토템 등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영광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자연환경이나 역사, 삶의 이야기들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문화유산들과 함께 영광을 진짜 영광 답게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가치들이다.

서해낙조. 백수 해안도로. 불교 도래지와 법성과 굴비. 가마미 해수욕장. 원불교 성지. 기독교 순교지. 칠산 타워 ...등 이미 널리 알려진 유적이나 관광지들이 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닌 유산이나 경관. 자연헌상. 설화 등 숨은 이야기들이 널려있다.

지금은 한빛원전 때문에 볼 수 없지만 옛 안마 마을

뒷 산 동굴로 밀물때 해수가 유입되면서 말울음 소리를 내는 천마(天馬)자리 동굴, 영광 팔괴의 하나인 금정산의 부금(浮金). 방랑시인 김립(金笠)이 금정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려오면서 쓴 한시(漢詩)

ㅡ작야일숙청천(昨夜一宿靑天) 어제 밤 푸른 하늘에서 지내고 족족시생백발(足足時生白髮) 한발 한발 내려오니 흰 머리카락이 돋는 것 같구나ㅡ 항월 등대. 조기잡이 어부들과 목냉기에 얽힌 질펀한 이야기. 칠산어화(七山漁火)를 비롯 한 법성포 12. 김지하 시인이 쓴 대설(大說) ()에 나오는 조아머리 이야기와 문병란 시인의

법성포 아낙네. 남부군의 마지막 토벌지가 된 까봉전투와 구수산에 얽힌 사연. 백수 해변에서 귀양살이를 했다는 고려 역신 이자겸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구미 암벽에 새겨진 한시 석구조대 와 그에 대한 화답 시. 늦가을이면 해안도로변의 암벽에서 피어나는 해국(海菊). 소의 입처럼 생겨서 붙여진 마을 이름 창우(倉牛)와 쇠아구지에 얽힌 이야기. 전 세계적으로 약 3.900여마리 밖에 없어 국제 보호종으로 지정된 저어새와 검은머리 물떼새가 집단 서식하는

염산의 갯벌과 그 생명력. 여름이면 칠면초의 오묘한 색으로 마치 자주색 융단을 펼쳐놓은 듯 한 월평 마을 앞 갯벌의 진귀한 풍경. 바라보면 꿈속인 듯 신기루인 듯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비작도와 그대칭으로 선 포내미골의 포작도. 가음산과 옥녀봉의 전설. 차음봉수. 과거와 현세와 래세를 연결하는 야월리 속리(俗里) 마을의 돌미륵과 조천고을의 전설. 영광 8괴 중의 하나인 음양수(陰陽水)와 백초(白憔). 누운섬이 매우 안좋은 의미의 설도로 바뀐 사연. 봉덕산과 오동리. 겨울이면 찾아오는 진객 군유염전 저수지의 백조들의 향연...등 헤아릴 수 없는 삶의 이야기들과 진귀한 자연 현상을 품은 영광의 서해랑길은 그래서 자연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소중한 유산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오는 동안 축적된 삶의 지혜와 사연이 담긴 이야기들 또한 현세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유ㆍ무형의 가치들이기에 세월 과 문명의 이기 속에 사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군정차원에서 근시안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닌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책을 수립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로(빛이 오다)현ㅡ고려 때 영광의 지명ㅡ, 영광(靈光). 전국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지명, 신령스런 빛의 고장. 영광의 진짜 영광다움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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