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 낳지 않는 이유

국형진/ 영광청년센터장
국형진/ 영광청년센터장

인간에게 종족 번식의 본능과 생존의 본능중 어느 본능이 더 우선할까? 위험한 상황과 일상적인 상황에서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생존의 본능이 더 우선한다고 사회학자들은 이야기 하는데, 아니 과거 어느때보다 살기 좋은 이 시대에 생존의 본능이 어떻게 작용한다는 말인가?

생존이라는 것이 삶과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살아 남는 과정 전체를 말하기도 한다. 포유류는 생존환경의 밀도가 높아지면 번식을 줄인다고 한다. 밀도가 높아지면 생존을 위한 자원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종족 번식을 미룬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생존을 위한 자원이 무엇일까? 필자는 공간, 자원(), 마지막으로 마음의 여유가 작용한다고 한다.

먼저 공간의 여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역별 출산율을 보면 인구가 몰려 사는 서울 경기 지역 (국토의 10%50%의 인구가 몰려 산다.) 인구가 몰리다보니 젊은이들이 살고 싶은 곳 우선순위에도 언제나 도시지역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구가 많은 지역에 문화, 보건, 교육 등 생활 인프라가 몰리게 되고 좁은 지역에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 따라서 이런 사회적 서비스를 추구하는 청년들은 불나방처럼 도시로 몰려 간다.

그래서 사람과의 거리가 좁아지고, 생활 공간도 좁아진다. 그러다 보니 익명성이 더욱 강조되고 도시화가 청년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수 없이 많아진다.

우선 공간의 가치가 올라간다. 이미 수도권 집값은 청년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구입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래 살던 사람이 아니면 미친말처럼 날뛰는 집값을 잡을 능력은 애초에 극소수의 경제적 능력이 있는 집안이 아니면 따라 잡을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주거에 대한 소유 개념은 집 한칸 마련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던 셀러리맨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으며, 소유를 포기하고 빌려 사는 문화로 정착되어 자산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3~4천만원 연봉으로 생활비 쓰고 저축 가능한 1~2천만원으로 80년 이상 저축해야 겨우 2~30평짜리 집을 그것도 서울 외각지역에 마련할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자신만을 위한 공간 하나 마련하지 못한 청년이 어찌 결혼을 생각하겠는가?

그러다보니 요즘청년들은 자산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주택구입은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하고, 지금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행태가 일반화 되어 버린다. 공간이 자산화가 되면서 생겨버린 요즘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인 것이다.

이렇게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저성장시대를 만나서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은 사회초년생인 청년들의 마음을 더욱 여유 없게 만든다. 지방에 사는 청년들은 처음 임금이 거의 2백만원에서 조금 더 받거나 아니면 최저급여이거나 하는 상황이며, 도시에 나가 사는 청년들도 연봉 3천만원을 받는 청년들이 많은데 이런 급여 상황에서 주식, 펀드, 코인 등 자산을 만들기 위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에 뛰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이성을 만날 여유를 가질수 있겠는가?

또한 이렇게 공간과 자원의 결핍속에서 청년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 끊없이 자기개발로 불안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 얼른 자산을 만들어서 나를 지킬수 있는 최소한의 자산을 만들고 싶은 생각, 먼저 결혼하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과 열등감,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준비되지 않은 것 같은 자신에 대한 자괴감 등 끝없이 자신을 비교하며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 요즘 청년들의 사랑과 결혼, 행복을 추구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청년들이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필자는 수많은 청년정책을 보며 이슬비 같이 넓게 퍼지는 약한 지원보다, 필요한 것을 유목화하고,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지원을 통해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시작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 필요한 것은 청년들에게 너무 높은 이상과 비현실적인 기대로 자신을 희망고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어릴때부터 수준높은 교육과 세계적인 꿈을 꾸게 만들어 놓고, 정작 현실은 부모가 살아온 과거보다 더 경쟁적이고 치열한 사회를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삶을 현실적이고 이성적으로 살아도 된다고 알려줄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년전에 중앙집권을 위한 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말을 가지고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과거지향적인 것은 아닌가?

지금 여기서도 행복하지 않은 청년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저기 어디엔가 있을 것 같다는 행복을 찾아 부모도 알지 못하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곳에 내던져지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을 위한 도전이라고 단언할수 있는가?

안팎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자체는 청년들의 교육수준과 희망수준에 맞는 공간적, 문화적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며, 청년들은 지방정부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도록 정책반영과 사회 분위기를 이끌어 갈 문화적 리더가 되어 양축의 역할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새로운 청년 문화와 행복한 지역 만들기의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