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 입구로 나주와 함평 등에서 영광으로 들어오는 길목

시멘트로 보수 처리로 옛 멋스러움 잃은 채 홍교 명맥만 유지

실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모여 있는 자연부락에 와 닿는다. 실개천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면 마을의 골목길까지 연결되어 집의 대문 앞에 이른다. 이런 풍경이 우리의 옛 마을의 서정이다. 지금은 마을의 나무를 비롯하여 샛길, 실개천까지 반듯반듯하게 자르고 다듬어 불편을 줄였지만, 옛 우리의 마을은 자연으로 꾸며지고 자연으로 멋을 부린 마을이었다. 부족함 없이 마을을 다닐 수 있었고, 이웃 마을을 다녔다. 실개천에 놓인 징검다리 위로 새색시를 태운 가마가 지나가고 밭갈이가 끝난 소와 농부가 함께 실개천을 건너다녔다. 저세상을 떠나는 죽은 이도 상여에 놓여 개천을 건넜었다.

지금 옛 마을의 풍경은 마을 길에서부터 가옥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꿔있다. 걷기보다 자동차를 이용하고, 비포장길보다 포장된 도로를 이용하는 시대에 와 있다. 많은 변화에도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 사람들의 동정을 담은 다리가 있다. 그곳이 영광읍 도동리의 도동리 홍교이다. 다리는 무지개다리(홍교)이다.

영광읍 도동리의 홍교는 상춘곡(賞春曲)의 저자로 가사 문학의 효시인 정극인(丁克仁)의 숭유척불한 공을 기리기 위하여, 사후 16년이 되는 해인 1497(연산군 3)에 왕명으로 건립한 것이라 전해온다. 영조 4(1728)1994년에 다리를 보수한 바 있다. 실제 다리는 옛 성이 있었을 당시 오일장이 서던 입구로 나주와 함평 등지에서 영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었다.

홍교는 왜소하고 소박하지만, 구법은 단순하나 견고하며, 자연적인 부재를 토대로 손질하여 자연스럽고 투박한 멋이 난다. 너비 184, 반지름 174의 홍예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13개의 부재로 결구 되었다. 홍예 부재로서 장대석은 크기가 평균 184×50이며 부재의 평균 길이는 180, 굵기는 50이다. 다리는 양 끝이 처지고 가운데는 무지개처럼 둥글게 굽은 구조로 되어있다. 홍교 옆에는 홍교비가 있다. 비석의 왼편에는 시인 조운(曺蕓)의 고향이라 새겨진 표지석이 있다. 비석의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전면에 "옹정(雍正) 6"이란 기록으로 1728(영조 4)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홍교 교각 밑에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에서 물을 식수로 길어 먹는다고 한다. 지금은 악취가 나는 생활 오·폐수가 흐르고 있는 하천을 잇는 다리로 전락한 데다, 다리 상단에 시멘트로 보수 처리해 옛 멋스러움을 잃은 채 홍교라는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본래 모습이 훼손된 채 논밭으로 가는 샛길과 하천 옆길을 잇는 다리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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