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당 이흥규의 고향 마을의 전설 기행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일컫는 것은 고려말에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서 붓 대통 속에 목화씨를 숨겨와 재배에 성공한 뒤에 흰 무명 배 옷을 입은 뒤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까지는 우리 선조들이 입었던 옷은 겨울에는 짐승의 가죽이요, 여름에는 삼베와 모시옷이 일반적인 의복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모시와 삼배는 선조들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작물이었다.

영광에는 모시와 삼베를 주로 심었던 흔적이 많다. 홍농읍의 상삼, 하삼 마을은 넓은 삼밭이 있어서 붙은 지명이며 영광의 모시 잎 떡이 유명한 것도 옛날에 영광 고을에서 모시를 많이 재배하였었다는 증거다. 그런 만큼 모시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는 것 역시 어쩌면 당연지사(當然之事).

아주 옛날 영광의 어느 마을에 모시를 잘 다루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처녀는 아침에 모시를 베어 모시 베를 짜서 오후에는 모시 베로 밥 소쿠리 덮개를 만드는 재주가 비상한 처녀였다. 이 일을 보통 사람이 하려면 모시를 베어서, 껍질 벗겨서, 삶아서, 실을 내어 모시 베를 짜서 덮개까지 만드는데 아무리 손 빠른 사람도 사흘 이상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처녀는 그 일을 하루에 다 하는 재주를 지녔으니 신기한 재주를 가진 처녀라고 소문이 났다. <모시녀>는 누구든 총각과 내기를 하여 자신의 재주를 이기는 총각이 아니면 절대로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이미 혼기가 찼지만,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시집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석삼내>라고 하는 총각이 처녀네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이웃 마을의 석삼내라는 총각이요. 내가 어찌 석삼내냐 하면 하루에 모를 쪄서 논 서 마지기에 모를 심을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고 석삼내라고 부릅니다. 일꾼 세 사람이 할 일을 혼자 하루에 다 하는 재주를 가졌지요. 아가씨와 내가 내기를 합시다. 해 뜰 때 시작하여 서녘 하늘에 해가 넘기 전까지 서 마지기 논에 모를 다 심으면 나한테 시집오기로 약속합시다.”

이 말을 들은 모시녀는

그렇게 하지요. 내일 아침 해 뜨기 전에 우리 집으로 와서 동산 마루에 해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일을 시작합시다.”

하고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일을 시작하였다. , 그런데 어쩌랴! 서산마루에 해가 닿자마자 모시녀는 밥 덮개를 다 만들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 해가 산마루에서 얼굴을 감추는 순간 석삼내는 모 세포기를 남기고 말았다. 일 초의 시간이 모자라 내기에 지고 모시녀에게 장가를 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내기에 진 것은 진 것, 석삼내는 모시녀네 논 서 마지기에 모를 심어주고 모시 덮개를 얻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 소문을 들은 <배룩남>이라는 총각이 모시녀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건너 마을에 사는 배룩남이요. 나는 하루 저녁에 벼룩 석 되 세 홉을 잡아 굴레를 씌워 잔디밭에서 굴리는 재주를 가졌소. 그래서 우리 마을에는 벼룩이 없어 사람들이 편안하게 잠잘 수 있소. 해가 지면 시작해서 해가 뜨면 끝내기 내기니 어떻소. 나와 시합을 합시다.”

하고 내기를 청했다. 모시녀는 좋다고 승낙하고 그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서산에 해가 둥근 얼굴을 감추자 모시녀네 집에서 벼룩 잡기와 모시 덮개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하룻밤 동안 모시녀네 집 벼룩이란 벼룩은 모두 잡혔다. 동녘에 해가 솟아오르자 모시녀는 다된 덮개를 내놓고 배룩남은 석 되 세 홉의 굴레를 내놓았다. 굴레를 놓자마자 벼룩 한 마리가 굴레를 벗고 폴짝폴짝 뛰어 도망가는 게 아닌가. 배룩남은 어이가 없었으나 어쨌든 진 것은 진 것, 배룩남은 모시녀네 집 벼룩만 모두 잡아주고 모시녀에게 장가들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모시녀는 애가 탔다. 세상에 나를 이길 수 있는 총각이 한 명도 없단 말인가. 나를 이기는 총각이 없으면 나는 처녀로 늙어 죽더라도 시집을 가지 않으리라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몸집이 거대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청년장사가 찾아와

나는 송산골에 사는 <송장사>. 이 마을 뒷산에 있는 돌을 모두 날라다 하루에 아가씨네 집을 빙 둘러 돌담을 쌓을 수 있소. 나와 내기를 합시다.”

하고 내기를 청했다. 이튿날 아침에 모시녀와 송장사가 시합을 하였다. 해가 서산마루에 퐁당 빠지자 모시녀는 덮개를 다 만들었는데 송장사는 바위 한 개가 모자라 집 둘레 돌담의 마무리를 못 하고 말았다. 그러나 송장사는 성질이 급한 사내여서 이 정도 하였으면 내가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나에게 시집오라고 우겼지만 모시녀는 끝내 안된다고 거절하였다. 성이 난 송장사가 모시녀의 허리춤을 움켜잡아 힘껏 내던지니 모시녀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십 리 밖에 사는 삼태기 총각이 하늘을 보니 한 아가씨가 날아오는 게 아닌가!

어이쿠! 땅에 떨어지면 죽고 말 터인데 저 처녀를 살려내야겠다.”

하고 즉시 대나무를 베어 커다란 삼태기를 순식간에 만들어서 날아오는 처녀를 받아 살려놓고 보니 소문으로만 듣던 모시녀였다. 삼태기가 모시녀를 받은 곳이 바로 영광읍 도동리로 모시녀는 자신을 살려준 삼태기 총각의 재주가 자신의 재주보다 훨씬 뛰어남을 알고 혼인하여 아내는 모시를 길러 옷을 만들고 남편은 대바구니를 만들어 팔아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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