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새로 출발한 정부의 지지도가 유사 이래로 낮다. 특히 대통령의 신뢰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때보다도 낮게 나왔다. 숫자만 봐서는 퇴임 직전의 레임덕이다. 유시민 작가는 SNS 방송에서 대통령을 할만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직설하기도 했다. 요즘 대통령 부부의 화제에 가려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처음 겪는 일이다. 하지만 정치 고관위 층에겐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누구도 막지 못할 거라는,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생각을 소유한 사람이 군주의 성찰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는 애당초 없었다. 전문 정치가인 선배 대통령들의 통치 시설과 비결이 쌓인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을 선택하면서 첫 단추는 잘못 끼워진 것이다. 모든 시작은 용산이다. 이상한 법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내려오는 곳이라는, 왕조시대의 천도에서나 봤던 잡언이 정말 현대 대한민국의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놓을 줄은 누구도 몰랐다. 조선 총독의 관저가 있던 청와대 터에서 새로운 용산으로 옮겨 국민과 소통의 시대를 열겠다는 말은 근본부터 틀렸다. 용산은 용과 여의주를 상징하는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역사가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궁궐에 묘지를 조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공동묘지가 바로 용산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 총독관저와 일본군 부대가 주둔하기 위해 용산에 터를 닦으면서 망월동과 미아리로 옮겨간 묘지가 무려 116만 기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 냄새가 청와대보다 훨씬 진득한 곳이다. 임진왜란 후에는 귀화한 왜인들이 살았고, 한일의정서(1904) 이후 용산을 강탈한 일본은 조선 주둔군 사령관 숙소와 조선 총독의 관저를 이곳에 지었다. 대통령은 일본의 기운을 피한다면서 과거 일본의 중심으로 들어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후에는 다시 미군 기지가 들어섰으니 사람으로 치면 기이한 운명의 땅이다. 현재 삼성가의 리움미술관과 삼성타운이 공동묘지의 중심에 해당한다. 유관순 열사의 묘 역시 이곳에 안장이 되었다가 대단위 이장을 하는 소란 중에 유실이 되고 말았다. 현재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 굴지의 SK, 신세계, 삼성, 현대 등 재벌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용산은 공동묘지였다. 용과 여의주를 찾았던 용산은 용산포 바로 위라고 했으니 전혀 다른 곳이다. 현재 용산은 일본 군대 주둔지에서 비롯한 둔지산이다. 결코, 대통령이 들어갈 궁궐터는 아니다. 조선 시대 정도전이 중심이 되어 지었던 경복궁이 지닌 의미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공동묘지였던 곳에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진 않았으리라는 생각이다. 정도전은 건물마다 이름을 지었고 뜻을 부여했다. 경복궁의 설계는 그의 역작이다. 중심엔 임금이 거처하는 궁이 있고 바로 앞엔 신하들과 조정(朝廷:아침 회의)을 열고 사무를 보는 궐이 위치하니 합성어로 궁궐이라 한다. 왕이 거처하는 궁(강녕전)의 뒤에는 왕비가 머무는 교태전이 있다. 교태는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주역의 64괘 중 태() 괘에서 따온 것으로 세종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위는 곤()이고 아래는 건()이니 지천태(地天泰)로 교반으로 이루어지는 만물의 생성을 의미한다. 경복궁의 뒤에는 약간 높은 대를 이루는 땅이 있고 이를 경무대라 불렀다. 이승만은 이를 본떠 자신이 머물렀던 곳을 역시 경무대라고 했고 윤보선은 이승만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청와대로 다시 바꿨다. 국가의 원수가 집무를 하는 장소치고는 격을 갖추지 못한 이름이다. ()는 집에는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용산에서 쓰고자 했던 People’s House(인민관)보다는 훌륭하지만 말이다. 참고로 경복궁(景福宮)이라는 이름은 시경에서 가져왔다.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히 그대의 큰 복을 모시리라의 의미다. 임금의 집무실인 근정전(勤政殿)편안히 노는 자로 하여금 나라를 가지지 못하게 하라는 뜻을 품고 있다. 현 정부는 과연 근정(勤政)을 하고 있는가.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면서 이미 첫 단추는 잘못 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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