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불상 전한 ‘마라난타’ 찾아 나선 순례길

간다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다는 탁실라

최종걸/ 전 연합뉴스 기자‘천년고찰이야기’‘불상의 기원을 찾아서’ 저자
최종걸/ 전 연합뉴스 기자‘천년고찰이야기’‘불상의 기원을 찾아서’ 저자

순례단은 투표를 통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간다라 불교유적지에 대한 순례에 나서기로 했다. 먼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인근 탁실라로 향했다. 탁실라(Taxila)자른 돌의 도시(City of cut stone)’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 의미처럼 곳곳에 돌로 조성한 불탑들이 즐비했다. 탁실라는 한국의 천년 고도 경주처럼 많은 불교 유적지가 있었다. 그 유적지 대부분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었다. 고대 인도의 파탈리푸트라에서 카슈미르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연결되는 실크로드의 중심부였다.

간다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다는 기록도 주목된다. 당시 탁실라의 왕이었던 푸쿠사티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인도 내륙의 마가다 왕국의 빔비사라 왕(기원전 543-491)과 절친한 교류를 가졌던 탁실라의 왕 푸쿠사티는 빔비사라왕으로부터 부처님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탁실라에는 인도와 로마, 중국 간의 무역로의 중심지라 진귀한 외국의 호화물품들이 많이 있었다. 푸쿠사티 왕은 부처님 소식을 듣고 빔비사라 왕에게 값을 따질 수 없는 선물을 보냈는데 빔비사라 왕은 마땅한 답례품이 없었다. 탁실라와는 달리 답례로 보낼만한 호화물품을 가지고 있지 않은 빔비사라 왕은 금쟁반에 부처님의 가르침과 삼보를 새겨 넣은 편지를 선물로 보냈다. 이 편지 글을 읽고 탁실라의 푸쿠사티 왕은 곧바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바로 탁실라 왕궁을 떠나 부처님이 계신 자라그리하로 가서 부처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이 처음으로 간다라 지역의 왕이 불교에 귀의한 내용이다. 그 이후 공식적으로 불교가 간다라에 전해진 것은 아소카 왕이 이웃 나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불교 사절들을 보내면서부터 라고 한다.

 

불두 사연이 깃든 성지 탁실라

탁실라는 부처님이 전생에 몸 보시 중 머리를 보시한 곳이다. 순례단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찬드라프라바(Chandraprabha)왕이었을 때 그의 머리를 요구하는 브라만에게 머리를 잘라 준 곳 탁실라를 찾았다. 불두의 어원이 서린 곳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같이 많은 철학자가 모여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탁실라에 원정 왔을 때 이곳에 사는 철학자들에게 매료되었다고 할 만큼 간다라 지역의 문화 문명의 보고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정벌 시 이곳에서 칼라노스라는 성자이자 철학자에 반해 스승으로 모시고 그리스에 반강제적으로 데려갈 만큼 성인들이 많았던 곳이 탁실라였다.

탁실라는 불교, 베다, 힌두교 교육의 중심지로서 기원전 약 6~7세기에서 기원후 5세기까지 세계의 위대한 스승들이 모여 있는 배움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당시 최고 교육을 받으려면 탁실라로 가야 한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탁실라는 고대부터 인도와 로마, 그리스,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을 잇는 무역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교통요충지가 번화하듯이 이곳도 동서양 문물의 중심지로 기능했기 때문에 화려한 문명문화를 꽃피웠다. 이곳에 불교가 전해져 성행된 만큼 불탑과 절들도 가장 좋은 곳에 조성됐다.

726년 간다라를 찾은 신라 혜초 스님의 기록에는 탁실라라는 말이 빠져 있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에 이곳에서 머리와 눈을 던져 다섯의 야차에게 먹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곳을 다녀간 중국 현장 스님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예언한 미륵보살이 이 세상에 출현할 네 군데 중의 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적과 전설이 산재해 있는 탁실라에서 발굴된 간다라 유물도 많다. 탁실라 박물관에는 4천여 점의 석조 조각, 석회 조각, 토기, 금과 은 그리고 여타 금속물 조각 등이 소장돼 있다. 고대 간다라 지방의 힌두교, 불교, 그리고 자이나교의 승원 유적과 고대 도시 유적에서 발굴 수집된 유물들이다. 특히 불교 전시품들은 기원전 1세기에서 7세기에 조성된 불상과 불교 조각들, 간다라 불교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파키스탄 고대사인 불교문화를 일깨운 한국 스님

순례단 이전에 이곳에 세 차례나 순례했던 대한불교천태종 전운덕 전 총무원장도 옛 탑과 절터를 보고 찬탄해마지 않았다. 특히 부처님 사리가 모셔진 아소카 대왕이 세운 사리탑인 다마라지카(Dharmajika)와 불탑은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명당이라면서 현지인들에게 복원을 당부했다고 한다. 전운덕 전 총무원장은 파키스탄 방문 시,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대통령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파키스탄의 찬란했던 고대 불교 역사와 문화를 상기하고 복원 노력에 힘써줄 것을 강조하자, 무샤라프 대통령은 우리가 몰랐던 고대사를 일깨워줘서 감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 스님 이후 수천 년이 지나도 법맥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의 후손인 전운덕 스님이 수천 년 후 선배 스님의 고향에 가서 그 나라 대통령에게 옛 혼을 상기시키는 흔치 않은 만남이었다고 당시 배석했던 박교순 교수는 회고했다.

마라난타 스님이 384년 백제로 포교 길에 나섰을 때 스승이 전한 불두를 가져갔는데 바닷길에 폭풍우를 만나거든 불두를 던지라는 말에 불두를 바다에 던졌고 이내 폭풍우가 가라앉았다는 불두이야기가 생각났다. 탁실라는 부처님이 전생에 몸 보시중 머리를 요구해서 잘라 줬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법성포 할머니와 주변 분들이 지금도 모시고 있는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마라난타 스님이 포교길에 폭풍우를 만나 던졌다는 그 불두이다. 탁실라가 부처님이 머리를 보시한 곳에 불상과 불탑 등 불교유적지가 된 것처럼 법성포에 마라난타유물관이 조성된 것도 불두와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전설로만 이어오고 있는 볼품없고 형상조차 희미해진 불두를 법성포 할머니와 주변 분들이 지켜온 말로는 설명이 안되는 기적의 결과물인 것처럼 보인다. 우린 그 마라난타 스님의 생가터를 향해 다음 순례길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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