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출생 신분(12)-율곡 이이

이번에는 율곡 이이(李珥)의 이야기이다.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학문에 널리 통달하고 산수화와 포도 등의 그림에 능하였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부덕(婦德)이 높았다. 현재 5만원 권 지폐에 초상화가 들어가 있는데, 여성 인물이 화폐 도안으로 등장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신사임당은 율곡을 낳기 전, 동해의 검은 용이 날아와 집 마루에 스며드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율곡의 어린 시절 이름은 용을 뵈었다는 뜻으로 현룡(見龍)이라 불렸고, 그가 태어난 방에는 지금도 몽룡실(夢龍室, 오죽헌 건물의 맨 오른쪽 방)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율곡 이이는 강원도 강릉부 죽헌동에 있는 외가 오죽헌 별채에서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의 집안 역시 대대로 벼슬을 한 명문 가문이었다. 이원수의 4대조인 이명신은 심종의 사위였는데, 심종은 태조의 사위가 된 인물이었다. 세종은 과거에 급제하지 않은 이명신에게 지중추부사(2)와 동지돈녕부사(2)의 벼슬을 주기도 했다. 이원수의 할아버지 이의석은 좌참찬(2품 문관)을 지냈으나, 아버지 이천은 스물넷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원수의 5촌 당숙인 이기와 이행 형제는 영의정과 좌의정 등 고관을 지냈다. 이원수는 영의정 이기를 찾아다니다가 아내(신사임당)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고 발길을 끊었는데, 그것이 훗날 큰 복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또 이기 형제의 외가 쪽으로 보면 생육신(生六臣, 세조 즉위 후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여섯 명의 신하) 성담수의 조카가 된다.

한편, 평산 신씨 집안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이자 태조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한 신숭겸이다. 신사임당의 부친 신명화는 신숭겸의 18대손으로 진사에만 그치고 큰 벼슬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고조 할아버지는 세종 때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며, 할아버지 신자승도 벼슬이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다. (신명화의) 아버지 신숙권(신사임당의 할아버지)은 태종의 막내딸인 정선공주의 외손자로서, 영월 군수를 지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신립 장군은 신사임당의 9촌 조카가 된다.

신명화에게 이원수를 소개한 사람은 이원수의 당숙인 이행이었다. 신명화와 이행은 함께 공부한 사이였는데, 이행이 향시관으로 강릉에 내려갔을 때 다시 만나 회포를 풀었다. 그 자리에서 이행은 조카인 이원수를 신사임당의 배필로 천거했고, 신명화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과연 신명화가 배움도 별로 없는 이원수를 사윗감으로 받아들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원수가 딸(신사임당)을 예술가로 키워줄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경우, 지나치게 높은 권문세가의 아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볼품이 없거나 지나치게 가난한 집안 출신도 아니었다. 또한 편모 슬하에서 홀로 자랐기 때문에 딸을 시집살이 시킬만한 인물도 주변에 없을뿐더러 나아가 친정살이까지 가능할 거라고 예상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그의 모든 예상은 적중했거니와 이원수는 50세 때 음직(蔭職)으로 수운판관(배의 운행을 총괄하던 종5품직)에 임명되고, 사헌부감찰과 통덕랑(5품 문관)까지 지냈다. 그리고 이원수와 신사임당 사이에서 태어난 율곡 이이는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을뿐더러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10만 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현재 5천원권 지폐에 초상화가 들어가 있는 바, 이처럼 어머니와 아들이 동시에 화폐 도안에 사용된 일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없을 듯 싶다.(영광 백수 출신, 광주교대 명예교수, 철학박사, 저서거꾸로 읽는 철학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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