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요즘 방송을 접하면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릴 적 담벼락에 붉은 글씨로 선정적 자태를 뽐내던 반공과 멸공의 구호들이다. 일 년이면 몇 회에 걸쳐 치러졌던 반공 포스터 그리기 대회, 반공 표어 짓기 대회, 반공 웅변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기도 했다.

모든 교육의 끝에는 항시 반공과 멸공이 자리했고, 우리는 세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세뇌가 되어갔다. 반정부 활동은 물론 생각의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던 시절에 들불처럼일어난 국민운동이 바로 새마을 운동이었다. 우리 세대엔 엊그제 같은 기억이지만 벌써 40~5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역사의 뒤안길에서 기록실에나 들어앉아야 할 반공과 새마을 운동이 다시 정가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지독하게 뇌에 각인된 반공과 새마을의 추억을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정부에서 다시 부상시킨 것이다. 반공과 멸공 그리고 새마을의 추억이다. 국민교육헌장을 강제로 암기시키고, 외우지 못하면 체벌까지 가해졌던 시절이다. 일본 메이지 유신 당시 군국주의를 대표하던 헌장인 교육칙어에서 차용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근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공식 발언을 했다. 과연 새마을 운동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진 것인지 알고 하는 발언일까. 새마을 운동의 노래 가사도 모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물론 현재 새마을 운동은 전국의 각 지부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지향점은 당시와 전혀 다르다. 이제 더는 개량할 초가집도 없고 더러운 도랑도 없다. 넓힐 마을 안길도 없으며 골목 문화 역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래서 요즘은 주로 환경 운동으로 방향을 바꿨으며 더 나은 생활의 개선점을 찾는 단체로 변모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머릿속 새마을 운동은 50년 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과거로의 회귀는 이뿐만이 아니다. 먼저 던져진 역사의 이단 발언은 친일이다. 조선총독부의 조선 침략 입장과 명분을 그대로 대변하는 발언이 정부의 여당발로 던져지더니 순식간에 전임 세 분의 대통령을 김일성 주의자로 만들었다.

리는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김일성 추종자 밑에서 통치를 받은 셈이다. 나라를 북으로 넘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현직 대통령은 주사파와는 협치하지 않겠다는 무논리의 발언을 던졌다. 주사파라는 단어도 오랜만에 듣지만 다시 치켜든 반공 논리도 오랜만이다. 협치는 야당과 하는 것이니 여당 말고는 모두 협치가 불가한 주사파에 해당하는 셈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보안법이 살아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없애려다 현 여당에게 죽게 얻어맞았던 보안법이다. 아직 주사파가 현존하고 대통령까지 공공연하게 던질 화두라면 마땅히 체포의 대상이 되어야 함이 맞다. 주체사상과 김일성 주의자라면 협치를 하지 않을 대상이 아니라 체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주사파 무리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간첩이다. 이들과 협치는 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그래서 모순이다. 간첩은 협치의 대상이 절대 될 수 없다. 한마디로 무능력한 정부를 가장 민감한 반공과 친일 그리고 사정으로 덮고자 하는 의도에 불과하다는 추정을 벗기 힘들다. 여당과 정부,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이 최근 일관성을 보이며 릴레이식으로 이어지는 현상에서 강한 의구심을 갖는 이유이다.

강원도 도지사의 채권 관련 사건은 국가를 흔들 정도의 파괴력으로 띄워졌지만 언론은 의외로 차분하다. 자신의 행위를 과거 이재명 대표의 성남 시장 시절 모라토리엄에 비유하고,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말까지 망설이지 않고 있다. 이래도 이재명 저래도 이재명이다.

도대체 자신의 채권 사태와 이재명 대표가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본인은 정작 당당하기만 하다. 현 정권의 모든 귀착점은 과거로의 회귀이다. 일제에서 반공과 멸공으로, 새마을에서 야당 대표의 과거 시장 시절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다. 추억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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