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다시 연말이다. 아침을 먹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저녁을 먹고 있더라는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그만큼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말일 것이다. 시간이 나이와 속도를 맞춰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는 보통 일갑자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기억의 이어짐이 자기공명 촬영의 조각이 되어 뭉텅이로 사라지면 끊어진 기억은 시작과 끝만 남기 마련이니 나이와 함께 따라붙는 게 망각이다. 물론 이는 보통의 현상이다.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몸의 건강을 위해 꾸준히 관리하고 신경을 쓰는 사람은 나이에 비해 아주 좋은 육체의 건강을 유지한다. 하지만 의외로 정신 즉 뇌의 건강은 나이를 핑계 삼아 일찌감치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어쩌면 몸보다는 뇌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는 방증일 것이다. 사람의 몸은 뇌에서 보내는 전기신호로 움직인다. 머리 쓰는 걸 게을리하면 녹이 쓴다는 말이 틀리지 않음이다. 과한 저염식과 많은 물의 흡수는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되며 뇌까지 녹슬게 한다는 학설을 대체로 나는 믿는다. 전기신호는 염분이 많은 관여를 하기 때문이다. 연말에 쏟아지는 정치계의 망언을 접하며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특히 이때쯤이면 올해의 사자성어가 등장한다. 전국 대학교수들의 투표로 순위를 정하고 언론은 이를 받아 싣는다. 2001년에 시작한 이러한 전통은 올해도 변함없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22년의 긴 세월을 밝고 희망찬 사자성어가 선정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 또한 특이사항이다. 모두 암울하고 분노하고 실망스럽고 심지어 부끄러운 내용이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조감도일 것이다. 국민을 벗어난 공간에서, 국민을 위한다는 허언으로 점철된 정치의 민낯을 보여준 대한민국 지도자의 같은 트랙에서 이어지는 계주였음이다. 작년에는 묘서동처(猫鼠同處)였고 올해는 과이불개(過而不改)이다. 묘서동처는 고양이가 쥐를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함께 한다는 뜻이니 올해 대선 후 상황을 만든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과이불개는 논어에서 찾을 수 있다. 위령공편을 보면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잘못이 있어도 이를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더 큰 잘못이다.’라는 뜻으로 연산군일기에서도 나온다. 어차피 정치권을 겨냥한 말이니 여당과 야당이 서로 상대에게 해당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어차피 해석은 내 방식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같은 위령공편에서 궁자후() 이박책어인 칙원원의 (躬自厚() 而薄責於人 則遠怨矣), 자신에 대해서는 스스로 엄중하게 책임을 추궁하고, 다른 사람에겐 가볍게 책임을 추궁하면 원망을 멀리할 수 있다.’라는 말도 한다. 잘못이 있으면 과감하게 고치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라는 말이다. 요즘 대통령실에 확성기로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마 듣지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2위엔 욕개미창(欲蓋彌彰)이 있다. 허물을 덮고자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뜻으로 좌씨전에 전한다. 누란지위(累卵之危)는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을, 문과수비(文過遂非)는 잘못을 그럴듯하게 꾸미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 군맹무상(群盲撫象)은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그릇되게 판단함을 뜻하는 사자성어다. 모두 허물과 그릇됨을 나무라는 성어들이다. 이게 우리 정가의 현실이고 지켜보는 국민의 눈이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정작 본인들은 알아도 모르고 드러나도 덮기에 급급하다. 심지어 없는 사실을 조작하고 꾸며서 창작예술의 경지까지 끌어 올린다. 하물며 부끄러움은 오히려 국민의 몫으로 남으니 이상 현상이다. 특히 국내 언론에선 현상을 파악할만한 거론조차 없고 흐릿한 형상이나마 외신에서 찾아야 하는 더욱 큰 부끄러움도 있다. 매년 연말이면 찾아드는 일상의 회의감을 웃도는 답답한 마음이 얼어붙은 정가와 서민경제의 앙상블이라면, 신년 역시 몹시 추운 해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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