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행복한 사람일까?

국형진
국형진

연말연시가 되면서 우리지역에서 좋은 대학에 가거나, 좋은 직장을 얻은 청년 또는 후기청소년들의 축하 현수막이 곳곳에 걸리고 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거나, 특수목적대학에 입학한 청소년들,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청소년들 모두에게 축하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런 축하 현수막의 주인공은 우리주변에 살고 있는 몇 명 안되는 소수가 아니던가? 대부분의 학생은 축하받지 못하는 대학에 입학하거나, 취업을 하거나 또는 취준생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기본적으로 축하받지 못한자들은 축하받고 싶은 마음에 높은 이상과 꿈을 꾸며, 대학이라는 취업 준비기관(?)에 가는 형국이다. 우리 영광군의 진학률을 보면 인문계는 90% 이상, 특성화 고등학교도 80%가 넘는 진학률을 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미래에 좋은 직업을 얻고자 하는 마음,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갖거나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에 모두 대학에 진학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는 날, 고등학교를 졸업할때처럼 현수막이 걸릴정도로 축하받을만한 결과를 얻는 친구들은 또 다시 소수에 불과 할 것이다.

현수막이 붙는 다는 것은 알리고 싶고, 축하받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행복의 기준이 현수막이 붙을 정도로 알리고 싶은 것에 있냐는 물음이다.

오히려 현수막의 주인공이었던 서울에 진학한 학생들이 지방보다 조금 높은 임금을 받는 직장에 대부분 입사하고, 살인적인 집값을 못이겨 직장에서 한두시간 출퇴근 시간은 기본인 경기도에 살면서 인생의 많은 부분을 지하철에서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몸을 부대끼며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할까?

평생 모아도 집사기는 이미 글러버려서 지금이 아니면 집을 살수 없다며 영끌족이 되어 집을 샀지만, 이자의 고공행진에 하루하루 숨막히며 살아가야 하는 청년들의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영끌족도 포기하고 N포족이 되어 그저 오늘 하루 살아가는 것에 만족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공부에 목숨을 걸고 자녀들을 성공이라는 허울을 덮어주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 했던가?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일하며,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을 한다. 모든 인생의 성장단계에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매년 세계 행복보고서가 발간되고 있다. 여기서 주장하는 것을 요약해보면 네 가지이다.

첫 번째가 주관적인 행복이다.

지금처럼 남의 시선에 의식한 페르소나가 강한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깨뜨려야할 부분이다. 자신이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사실 행복은 매우 주관적인것이어서 객관적인 잣대를 대면 한없이 성장해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 지금이 행복하다면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고 알만한 회사에 다니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영광에서 아무도 모르는 회사에 다니더라도 내가 행복하다면 행복한 것이다.

두 번째는 신뢰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정치, 사회적 운영체계를 신뢰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의심하지 않고 믿음을 갖을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참여의 활성화를 통해 정책과 예산의 투명성 확보와 정책 참여 통로의 일상화가 되면 이룰 수 있는 부분이다.

세 번째는 시간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는 대한민국, 쉬라고 주어지는 연차휴가도 돈을 주며 쉬지 못하게 하는 문화가 과연 자신을 돌아보고, 쉼을 통해 재충전하여 일의 효율을 높이는 선순환을 이끌어 낼수 있을 것인가? 북유럽의 연 30일의 유급 휴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

네 번째는 책임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고, 정책에 참여주체가 되며, 생각할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높은 세금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납무할수 있는 것이다.

행복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들의 전형을 보면 위의 조건들이 대부분 충족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바꿀수는 없다. 하지만 지역에서 새로운 행복도시에 대한 부분을 제시한다면, 어쩌면 우리 영광의 젊은이들, 주변에 젊은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행복도시 영광군을 만들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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