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호 시인, 행정학박사, 백두산문인협회 회장

인간들의 끝없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를 불러왔다. 이제 대자연은 폭우, 폭풍, 폭설, 폭염, 혹한, 지진, 해일 등으로 인간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도 바람도 때에 알맞게 순조로운 우순풍조(雨順風調)하는 날씨는 아니지만 봄은 여전히 아름다운 걔절이다.

밤이 아무리 어둡고 막막해도 새벽이 오듯이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지라도 봄은 오고야 만다. 눈보라치는 한겨울의 엄동설한(嚴冬雪寒)은 모든 생명을 움츠러들게 하고잠들게 하고 죽이고 생명 활동을 정지시킨다. 모든 생명이 정지된듯한 추위와 눈 쌓인 언땅 아래에서도 생명은 얼어 죽지 않고 봄을 준비한다.

안으로 안으로 감추고 응축된 생명력은 때를 기다리다가 봄이 오면 껍질을 깨고 단단한 흙 표면을 뚫고 연한 움을 내민다. 연노란 새싹은 자라면서 연초록으로 옷을 갈아 입고 더 자라면 초록의 청춘이 된다. 새움 트는 삼월이 지나서 계절의 여왕 오월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온 세상을 푸르름으로 물들인다.

만물이 태어나고 다시 살아나는는 봄은 생명과 소생(蘇生)의 계절이다. 푸른 잎사귀를 떨구고 죽은 듯이 빈 나뭇가지 맨살로 서 있는 벌거숭이 나목(裸木)들이 어느새 푸른 옷으로 갈아 입는다. 메마른 대지에는 갖가지 풀과 작은 꽃들이 피어난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하늘과 땅의 섭리다. 설명하기 어려운 위대한 대자연의 섭리다.

봄은 자유와 해방의 계절이다. 한겨울의 강추위와 폭설은 생명을 위축시키고 정지시키고 단련시키고 사멸시킨다. 소극과 침체와 부자유가 스며들기 좋은 계절이 겨울이다. 빙상 스키, 겨울 등산 등 겨울철을 즐기는 활동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생명 활동에 적절하지 않은 환경이다. 봄이 되면 모든 생명이 잠에서 깨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자기 생명 본래의 성장과 활동을 시작한다.

대지의 풀과 나무들은 지나간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잊고 힘찬 도약을 시작한다. 미지의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도전과 진보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저 푸른 하늘과 이웃 생명을 향하여 조금씩 손을 내밀고 다가간다. 내민 손이 맞닿으면 기뻐서 춤을 추기도 한다. 연대와 상생이 세상을 바꾸어 간다. 전에는 미쳐 생각하지도 못했던 평화와 기쁨이 온몸에 넘쳐흐른다. 참 자유와 해방의 세상이다.

봄은 인간에게도 자유와 해방을 준다. 활동하기에 편리한 따뜻한 날씨도 날씨려니와 움츠리고 억눌린 감정에서의 해방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똑 같은 대상을 두고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그 느낌이나 생각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민큼 들린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자기의 그릇이 작거나, 자기 생각이 편협되어 있거나, 미움이나 적대감으로 차 있다면, 모든 것을 자기 마음의 안경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옛 성인들은 마음의 편견과 원망, 무지(無知)와 무명(無明)을 없애야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누누히 가르치고 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탐진치(貪瞋痴) 세 가지 독(三毒)이 인간의 모든 죄업과 불행의 근본 원인이다. 하루 세 번이 아니라 늘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一日三省) 잘못된 마음과 행위를 죽는 날까지 주저없이 고치고 또 고쳐 나가야 하는 과정(過則勿憚改)이 우리 삶이다.

봄은 분명 생명과 소생, 자유와 해방의 계절이지만,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새 울고 꽃 피는 봄이 혹독한 겨울 보다 더 힘들고 부자유스럽고 가혹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한겨울에도 잘 나가고 봄에는 더욱 잘 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절망과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다. 반대로 잘 나가는 그런 사람을 바라보면서 배우고 자극을 받고 분기(憤氣) 탱천(撑天)하여 잠자던 생의 의욕을 깨워서 생명 활동을 왕성하게 펼칠 수도 있다.

우리 인생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들 힘든 짐을 지고 먼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그네다. 삶은 크고 작은 문제의 연속이요, 고통의 바다(苦海). 더구나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이다.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백세 시대에 100살까지 산다고해도 하루하루 죽음 앞으로 걸어가면서 죽어가고 있다. 백세까지 살다간 어느 노()철학자의 유훈(遺訓)은 지금도 내 가슴을 적시고 있다. ‘모든 순간 순간을 최후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라’. 아름다운 봄날을 그리는 우리들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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