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운 시인, 서예가, 전 교장

미국인들은 신대륙에 정착할 때 맨 먼저 학교와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 기독교도들이었으므로 교회를 지은 건 당연하다. 그러나 학교를 지었다는 것은 자녀 교육을 통해 더 나은 나라를 건설하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이렇게 지어진 학교와 교회는 지역 공동체의 중심역할을 하였고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러한 힘이 그들이 건설한 나라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위대한 미국이 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학교의 역할은 지대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여 스승을 존경했다. 학교에서 하는 일은 무조건 믿고 따랐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선생님께 물었으며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자란 인재들이 나라를 이끌어갔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칸트는 인간은 교육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라고 하였다.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한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의 한 중심에 학교가 있다. 물론 학교를 다니지 않고도 교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지 않고 한 공부는 불완전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인간이란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고 학교란 지식을 탐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힘만으로 교육을 할 수는 없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함께했을 때 교육의 성과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특히 학부모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 학부모가 학교와 교사를 믿고 격려하며 지원해 주었을 때, 자신의 자녀 교육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어느 교실에서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들 몇 명을 남겨놓고 숙제를 다 하고 가도록 했다. 한 아이가 몹시 기분 나빠하면서 집으로 갔다. 엄마를 보자마자 책가방을 현관에 집어던지며 투덜거렸다.

숙제 안했다고 선생님이 남겨서 공부를 시켰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자기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때 엄마가 화를 버럭 내며 아이에게

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내 맘에 안 들더라. 내가 자주 찾아가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내가 전화해야겠다.”

전화를 들고, 이런저런 말로 담임을 비난하고, 닦달하였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내 엄마가 내 편을 들어 주니까 기분이 좋아질까?

아니다. 선생님이 더 미워진다. 선생님과 마음의 거리가 더 멀어진다. 다음날 등교하여 선생님을 보면 선생님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며 자기를 더 미워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아이가 학습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가 이렇게 대했다면 어떨까?

오 그랬어. 힘들었겠다. 그러나 선생님은 네가 공부를 잘하라고 그러신 거야. 너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래.”

라고 했다면 어떨까?

네 선생님은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라더라. 배구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는단다.”

했다면 더욱 좋았겠다.

물론 선생님에 대해 서움함이 있다면 아이가 모르게 선생님과 대화하면 된다.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우리 아이를 바꾼다. 부모가 학교를 믿으면 아이들도 학교와 선생님을 더 가깝게 느끼며 자신에게 더 관심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학교생활에 적극성을 띄게 되고 학력이 향상됨은 물론 생활도 활기를 갖게 된다. 학교가 가고 싶고 선생님께 더 잘 보이고 싶어진다.

물론 학교나 선생님께 서운 점이 있을 수 있다. 서운함을 참으라는 게 아니다. 아이 앞에서 표현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이가 모르게 전화를 한다든지 찾아가서 의견을 말하고 서로 소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이는 항상 선생님을 존경하고 좋아하게 해 주어야 한다. 학교와 선생님이 더 잘할 수 있게 격려도 하고 의견도 제시하고 질책도 하는 적극적인 학부모가 필요하다.

어머니는 말 한마디로 자녀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마법사다.” 이하림 기자의 <인생을 밝히는 말>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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