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어느 국가든 역사는 소중하다. 역사는 민족의 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스페인은 주변 국가를 침략 정벌하면서 가장 먼저 종교를 쳤다. 왕래가 힘들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지역별 종교가 현저히 달랐고 모시는 신은 국가마다 다르기 마련이었다. 종교를 친다는 의미는 당해 민족의 혼을 송두리째 도려낸다는 것이니 침략의 첫 단계가 된다.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개종의 권고를 받기 전에 죽임을 당한다. 자신들이 모시는 신과 다른 신을 모신다는 자체가 불경이고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무력 침략에는 협상이나 타협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침략의 출발에서 종교 지도자를 먼저 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부족 혹은 성읍과 나라는 대부분 모시는 씨족 신이 있거나 신화로 각색된 역사를 종교와 혼합해서 이어가고 있기 마련이다. 결국, 민속에 스며들어 있는 종교가 역사가 되고 역사는 해당 민족의 혼이 되는 셈이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로 넘어갈 무렵을 생각해보면 일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장 많은 종교가 탄생한 시기이고 대부분 민족 종교를 표방했다. 백성의 저항이나 운동 혹은 혁명 역시 항시 종교가 바닥에 깔려 있었고 종교적 신념이 지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역사는 민족의 혼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단일 민족을 표방하는 국가도 민족적 철학까지 동일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습은 과거 우리 역사에서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삶의 지향점은 개인의 욕망 치수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증거다. 우리 민족이 중국의 본토에서 일어난 이후 한반도에서 현재 국가를 이루기까지 많은 나라가 흥망을 거듭하지만 멸망해서 없어진 것은 아니다. 바로 민족의 연결성 때문이다. 고조선이 북부여로, 북부여가 5국으로, 5국이 남북 2국으로, 다시 후삼국으로 나뉘어 다투다가 백제계의 왕족은 대부분 일본으로 건너가서 주류가 되고, 후삼국은 고려라는 이름으로 다시 단일을 이룬다. 사라진 민족은 없으며 역사는 민족의 기억을 담고 흐를 뿐이다. 바뀌는 건 국시와 국책이지 우리가 버리거나 잊어버린 역사는 없다.

최근 벌어지는 대일 외교가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임을 역사를 통해 자각해야 하는 이유이다. 개인의 욕망이 민족적 지향점을 바꿔버리는 사태를 역사는 품고 있다. 내부에서 발생한 사태는 민족의 흐름을 끊지 못하지만 외부의 불순한 사상적 침략은 때로는 국가의 맥을 끊어놓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내부의 흔들림이 심하면 이러한 상황은 더욱 쉽게 다가온다. 신라의 진골이라는 친족 정치를 벗어나기 위해 고려는 종친불사(宗親不仕/왕가 친적의 벼슬을 금함)라는 국시를 내세워 건국하지만 친척 대신 친신(親臣) 정치로 폐행을 낳고 무신정치의 단초를 만들고 만다. 비정상의 내부 흔들림은 백년이라는 긴 세월을 원의 간섭기로 내주고 고려 제국은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한다. 현재 우리의 대일 외교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1910년의 국치일에 날인을 했던 당사자들과 세계관이 너무 흡사한 현 정부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국민 분열이다. 나라를 팔아도 전혀 개의치 않을 세력이 국민의 3할이나 차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뼈속까지 느끼고 있다. 이러한 분열 현상은 민족의 혼을 팔아넘긴 역사가의 온전한 책임이다. 문제는 나라의 최고 정점 권력이 3할에 몸을 담그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들의 뿌리는 어디일까. 여기에서 친일은 본질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친해져야 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민족의 혼을 지탱하게 만들어주는 우리 역사관이 뚜렷해야 한다. 일본의 역사관에서 허우적거리는 부류에게 우리는 일본을 포함시키기 마련이다. 이들에게 독도는 우리 땅이지만 다께시마는 일본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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