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올해는 봄이 평년과 다르게 나타났다. 일정 간격을 두고 개화를 하던 꽃들이 거의 동시에 꽃망울을 터뜨렸다. 찬란한 봄의 향연이 짧게 끝났다는 결론이다.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를 보고 다시 계획을 추스를 틈도 없이 선암사의 매화는 막을 내렸고 차후 계획까지 접게 만들었다. 그래서 십여 년 전부터 영광군 자생 야생화를 찍고 있는 포토매니아 회원들과 요즘 자주 찾는 곳이 관내 들과 산이다. 특히 불갑산은 영광군의 야생초와 풀꽃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산이기에 수시로 찾는다. 요즘은 야생난초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 꼬마은난초, 은난초, 금난초 그리고 조금 있으면 약란, 한라새둥지란 등도 얼굴을 내민다. 그래서 영광군에 간절히 호소했던 게 불갑산 일대의 생태 보호였다. 오늘도 며칠 전 봐두었던 은난초를 찍기 위해 불갑산을 찾았지만 이미 파헤쳐진 흔적만 남기고 보이지 않았다. 십여 년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이곳의 야생초 개체가 확연히 줄고 있는 원인이다. 일부 등산객과 야생화 사랑이란 그럴듯한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는, 야생화 육묘와 판매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채취가 불갑산 야생화 생태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노루귀와 변산바람꽃은 이미 절반 이상 줄었고, 식재했던 한라새우란은 작년에 여러 촉이 보였지만 올해는 단 2촉만 남아 있으니 사람의 손을 탔다는 결론 외에는 없다. 물론 불갑산의 생태 보호가 영광군민에게 당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을 바탕에 깔고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은 자연에 맡겨야 한다는 말인데, 몰려드는 등산객과 채취꾼의 손길과 발길에서 무너지는 자연의 질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게 최근 상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알다시피 우리 영광군은 제대로 된 생태 조사를 통한 기록이 없다. 군민이 인지하고 있는 건 참식나무 정도이다. 그래서 군목으로 지정하고 보호하고 있다. 그나마 북방 한계지 식물로 알려지면서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기에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불갑산에서 자생하는 모든 식물은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너무 무방비 상태로 열려 있다. 보호를 요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쪽에 단을 쌓고 인위적인 꽃밭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자라던 진짜 야생화는 모두 없어졌고 새로 식재한 정원용 꽃만 남아 자라고 있다. 문제는 꽃무릇을 대량 식재하면서 무너진 생태이다. 겨울에 무성하게 자란 꽃무릇의 세력에 깔려 중의 무릇 등 작은 야생초는 모습을 감췄다. 관광객을 위한 자연의 희생이라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동물이 개미에서 코끼리까지 중요도의 경중이 없듯이, 식물 역시 미미한 풀꽃에서 큰 떡갈나무까지 중요의 경중이 없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지구라는 대형 구체까지 철저하게 연결되고 얽혀 있는 게 자연이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의 오만함도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의해 멸망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해짐이 옳을 것이다. 자연은 보호되어야 하고 생태는 유지되어야 한다. 당장 보호 인력을 배치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불갑사 절 바로 위 불갑산 진입로에 채취를 하면 과태료 등 처벌내용을 담은 경고판이라도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여러 종의 난초가 올라오는 지금이 가장 불법 야생초 채취가 많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니 미룰 일이 아니다. 환경에 관심 있는 군민을 군민 감시단으로 임명하고 수시로 들러 보게 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자원봉사 형식을 취하면 따로 경비를 지출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역시 인위적인 식재이다. 야생초 자생 일대에 최근 엄청난 양의 상사화 종류가 심어지고 있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너무 많으면 귀함을 잊는다. 야생초가 자생하는 깊은 골짜기까지 밀고 들어온 상사화 식재가 염려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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